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섬진강 구재봉[신문기사일: 2013. 4. 4]
산정(지홍석)
2013. 4. 4. 13:57
[산사랑 산사람] 섬진강 구재봉














# 지리산 천왕봉·섬진강 조망 최고의 명산 # 소설 '토지'무대 악양벌·평사리 한눈에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기어가는 형상이라 구재봉이다. 무명인 이 봉우리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부상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남반부의 최고봉이자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정면으로 조망할 수 있고 전국의 강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을 조망하는 데 이만한 명산이 없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며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섬진청류’라 불리는 ‘지리십경’ 중 하나다. 전체 길이 212.3㎞로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이다. 이 물줄기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봉황산에서 발원하여 지리산 자락을 끼고 돌면서 숱하게 아름다운 강변을 만들어 낸다. 그중에서도 하동군 화개면의 화개나루가 가장 넓고 깊다. 여느 강보다 정겹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과 소설가들이 창작의 보고로 삼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동IC에서 내려 하동을 지나 5분이면 등산 시작점인 서재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대형버스도 서재마을 삼거리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마을회관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우측 임도로 방향을 잡고 언덕의 사면 길을 넘으면 임도가 급격하게 좌측으로 꺾이는 지점이 나온다. 임도를 계속 따라도 되지만 길을 버리고 우측 밤나무 숲으로 접어들면 곧이어 옥산재다.
옥산재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소나무 숲이 기가 막히게 좋지만 오름길은 다소 가파르다. 지능선 끄트머리에 올라 올망졸망한 바위 몇 개가 있는 지점에서 바위 위에 올라가 신촌마을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서부터도 약간은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분지봉 정상이다. 오름길 주변과 정상부 일대에는 온통 진달래 밭이다. 언젠가 분지봉 정상에서 찍은 진달래 사진을 접한 적이 있는데 해가 떠오르기 전 만개한 진달래와 주변 산의 스카이라인이 감동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정상부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지키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절터였을 이곳에는 큰 바위가 조망대처럼 놓여 있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변의 조망이 환상이다.
남쪽으로 조망도를 펼치면 역광으로 빛나는 황금빛 햇살 아래 섬진강이 금빛으로 꿈틀거리고 섬진강 왼쪽으로 하동의 명산 금오산이 우뚝하다. 크고 작은 산들과 봉우리, 저수지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섬진강 우측으론 갈미봉이 보이고, 그 우측 너머로 고개를 들면 고로쇠 물로 유명한 백운산과 억불봉이 검은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다. 북쪽의 조망은 분지봉 정상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먹점재로 내려서면서 보는 조망이 훨씬 더 빼어나다. 올라야 할 구재봉과 하산로인 활공장 능선 아래로 작은 암자가 보이고 그 능선 뒤쪽으로 지리산 연릉과 천왕봉이 아스라이 꿈틀거린다.
먹점재는 지리산 둘레 길의 구간 중 한 구간이다. 페이스가 약한 분은 먹점마을과 신촌마을로 둘레 길을 연계해 탈출할 수 있다. 먹점재에서 구재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오름길로 약 2㎞ 거리다. 도보로 약 1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구재봉 정상 조금 못미처 능선에서 우측으로 70m 지점에 바위지대가 보인다. 조금만 발품을 팔아 왕복하면 멋진 조망과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구재봉 정상부와 섬진강은 한 폭의 그림이다.
구재봉 정상은 생각보다 드넓다. 헬기장과 통신탑, 구재정 정자와 정상석이 있다. 정상석 남쪽 앞부분에는 거북 구(龜)자인 구재봉(龜在峰)이 새겨져 있고, 북쪽 뒤쪽 부분엔 비둘기 구(鳩)자인 구재봉(鳩在峰)이라 적혀 있다. 정상부 일대 주변의 바위는 거북이 모양에 가깝지만 분지봉이나 정상부 못미처 바위지대에서 올려다봤을 때는 하늘을 나는 비둘기처럼 보인다.
상사바위, 흔들바위, 통시바위, 새기바위 등 기암들이 즐비하고 바위틈엔 천년 석굴과 방바위도 있다. 조망은 지리산 입산이자 조망대라 불릴 만큼 빼어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악양면 서쪽의 형제봉(성제봉 1,115.2m) 능선과는 평사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면서 대칭해 내려가고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섬진청류를 바라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아름다운 섬진강 너머 우뚝 솟은 광양 백운산(1,216.6m)과 그 자락의 호남정맥이 보이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뻗어 내린 영신봉을 비롯한 지리산 지능선과 주능선 상의 촛대봉과 천왕봉이 조망된다. 정상부 내림 길 중 천길 벼랑에 매달린 소나무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절벽으로 형성된 동쪽의 바위 군락들이 1천여m의 산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곳을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좌측 ‘활공장’ ‘미동’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지능선을 탄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구재봉과 우측 분지봉이 인상적이다. 조망의 산답게 그 끝은 근래에 공사가 완공된 활공장에서 다시 한 번 이뤄진다. 소설 ‘토지’ 속의 주 무대인 악양벌이 가슴이 탁 트이도록 아름답게 펼쳐지고 좌측은 섬진강의 하얀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다. 악양벌과 어우러진 평사리와 신선대, 형제봉 너머로 산의 능선들이 차례대로 중첩되고 우측은 지리산 촛대봉과 제석봉, 천왕봉이 병풍으로 둘러쳐진다.
활공장부터 하산로가 조금 가파르다. 그러나 등산로는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푹신푹신해 별 무리가 없다. 한참을 내려서니 이정표가 나오는 지리산 둘레길을 다시 만난다. 좌측이 미동마을로 가는 길이고 우측이 대축마을이다. 직진해도 능선을 따라 미동마을과 대축마을로 연결이 된다. 조망의 최고 명산인 하동 구재봉과 분지봉은 각자 독립된 봉우리로 주능선은 지리산의 실핏줄에 해당된다. 따로 끊어서 지리산 둘레길과 연계한 등산도 가능하다. 서재마을에서 분지봉, 구재봉을 거쳐서 미동마을이나 대축마을로 내려서는데 약 12㎞ 거리에 4,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지리산을 비롯해 백운산. 갈미봉, 하동 금오산 등 모든 산을 조망할 수 있고 섬진강의 푸른 강물과 백사장은 덤이다. 사면팔방 막힘이 없어 조망의 극치를 이룬다. 이제 이름만으로 산을 찾는 시기는 지났다. 가장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실제적 조망과 전경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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