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창녕 구룡산 관룡사·옥천사지
# 등산 거리 짧지만 천길 벼랑 암릉 압권
# 대구 근교 ‘스릴 산행’ 명소로 떠올라
창녕의 진산 화왕산(756.5m) 옆에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형제 같은 봉우리 다섯 개가 있다. 관룡산(754m)·구룡산(741m), 그리고 715m봉과 화왕지맥의 753m봉과 723m봉이다. 이 다섯 봉우리의 특징은 마치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옥천골에 위치한 관룡사와 옥천사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자하골이 화왕산을 오르는 단조로운 등산 코스라면 관룡사에서 관룡산(754m)을 거쳐 화왕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적당히 긴 거리에 볼거리도 많아 산꾼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이 코스의 들머리인 관룡사에서 우측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능선을 병풍바위라 부른다. 그곳에 위치한 산을 일컬어 구룡산(九龍山·741m)이라고 부른다.
등산의 시작점은 옥천리 관룡사 주차장. 버스 진입은 어렵지만 자가용은 관룡사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숲으로 우거진 임도를 500m 정도 따르면 삼거리 우측에 옥천사지가 보인다. 제법 높다란 돌 더미가 성곽처럼 쌓여 있고 그 안에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과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신돈이 태어나고 출가했다는 옥천사 터다.
신돈(辛旽·?~1371)은 고려 공민왕 때의 승려로 묘청(妙淸)과 함께 요승(妖僧)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 사대주의자들이 민족의 자주성을 주창한 묘청과 신돈을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았던 토지를 돌려주고 노비를 해방시킨 신돈을 후세에 개혁가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돈은 결국 역모죄로 처형을 당했고 그가 태어난 장소이자 어머니가 노비로 있었던 옥천사도 같이 폐사되고 말았다.
한 쌍의 돌장승이 좌우에서 반기는 우측 소로를 통과하면 보물 제212호인 대웅전, 제164호인 약사전, 제519호인 석조여래좌상, 제295호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등 4점의 보물과 여러 문화재가 남아 있는 관룡사다. 4세기에 창건된 사찰은 규모는 작지만 신라시대에는 8대 사찰로 불렸다. 대웅전 등 대부분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지만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만이 전화를 면했다.
절의 입구에서 직등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청룡암를 거쳐 병풍바위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다. 그리고 절 안에서 좌측 깊숙한 곳으로 접어들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거쳐 관룡산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다. 구룡산 암릉으로 가는 길은 부도탑이 있는 우측 길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 두 기의 부도 뒤로 길은 이어진다.
마른 계곡을 건너 두어 번의 얕은 오르막을 오르게 된다. 곳곳에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제일 잘 나있는 곳으로 무조건 진행하다 보면 주변이 온통 적송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소나무 군락지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좌측 지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소나무 숲길이 10여 분 정도 이어지다가 곧 바위로 된 능선을 만난다. 오름길 곳곳이 바위지대라 조망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등산을 시작하고 1시간이면 주능선 암릉이다. 구룡산 산행 중 유일하게 지체되는 곳이 첫 번째 암봉 내림길이다. 급경사의 바윗길이라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러나 눈이 내린 겨울철이 아니면 조심해서 내려서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암봉 정상에 오르기 전 우측으로 돌아가는 우회로도 있다.
아찔한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탁 트이면서도 화끈한 조망을 즐긴다. 아기자기한 바위를 요리조리 통과하다 보면 어느덧 흙으로 된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있는 심명고개로, 부곡온천으로 이어지는 우측 길로 100여m 정도 더 가야 구룡산 정상이다. 정상엔 이정표와 등산 안내도가 있지만 조망은 그리 좋지 못하다. 되돌아와야 하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화왕산과 관룡산 방향은 심명고개에서 왼쪽길이다. 100여m 정도 내려가면 오른쪽 사면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이지만 원 없는 조망과 스릴 있는 등산을 위해서는 직진하는 주능선을 탄다.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 두 군데서 천길 단애의 조망을 즐기고 내리막길을 따르노라면 그림 같은 선경이 펼쳐진다. 구룡산 산행의 백미인 병풍바위가 칼날 같은 능선을 자랑한다. 풍경이 가히 절경이라 국내 어느 곳의 비경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좌측 관룡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통과하면 다시 바위전망대다. 전망대에서 관룡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관룡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고 앞쪽은 넓은 헬기장이다. 그러나 조망이 터지지 않아 답답하다. 남쪽으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 관룡사로 가는 길이다.
나무와 흙으로 조성된 가파른 계단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관룡사가 얼마 되지 않는 지점에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이 있다. 석굴암의 본존과 같은 양식으로 조성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불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용선대에서 관룡사까지는 10여 분 정도면 내려설 수 있다.
관룡사 주차장에서 등산을 시작, 구룡산, 관룡산, 용선대를 거쳐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데 약 5.5㎞의 거리에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좀 더 긴 산행을 원한다면 관룡산에서 화왕산 정상까지 연계한 후 화왕산성 남문에서 옥천사지로 하산하거나(11.1㎞, 5시간 정도), 배바위를 거쳐 753m봉, 723m봉을 지나 관룡사 주차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약 13.5㎞, 약 6시간 정도).
화왕산과 관룡산의 그늘에 가려진 구룡산이지만 산세만큼은 오히려 두 산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설악산과 월출산 같은 바위봉우리에 능선이 마치 아홉 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 면이 천길 벼랑으로 이뤄진 위험한 바윗길에는 곳곳에 우회로가 나 있다. 그러나 구룡산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직등하는 주능선을 타야 다양한 바위군상이 있는 스릴 있는 등산로를 만날 수 있다.
등산 거리가 짧으나 암릉이 만만치 않은 구룡산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구 근교에 위치한 최고의 암릉 산행지로 급부상 중이다. 부곡온천과 겸해도 여유 있는 하루를 충분히 즐기고도 시간이 남는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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