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전남 보성군 계당산 철쭉 산행
# 솔 향 그윽한 숲길 지나 두 시간…정상부 물들인 진한 선홍빛 일대 장관
호남정맥의 중심지 전남 보성군에 새로운 철쭉 산행지가 뜨고 있다. 아직, 세간에 많이 오르내리지 않은 생소한 산이지만 벌써 2년간에 걸쳐 철쭉제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산의 이름은 계당산(桂棠山). 예로부터 생거복내(生居福內)의 10경 중 1경을 이루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는 580.2m, 보성군 복내면과 화순군 이양면의 경계에 위치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성 계당산이라 부른다. 산의 지명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철쭉이 아닌 9정맥의 하나인 호남정맥에 위치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철쭉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철쭉 산행지로 급부상했다.
◆기복 심한 소나무 숲 길
보성의 산들과 필자는 인연이 각별하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대세일 때. 철쭉산 일림산과 초암산을 대구에 소개했다. 그 당시만 해도 사진작가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었을 뿐 등산지도와 등산로가 전무한 시절이었다. 독자적으로 등산로를 개척해 행사를 열기도 하고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전문 산악 잡지에 철쭉 산행지로 추천을 하기도 했다.
등산의 시작점은 보성군 복내면사무소. 면사무소 우측에 우체국이 보이고 삼거리에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교회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측으로 감아 돌면 임도에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50m 정도 올라가면 ‘계당산 정상(숲길)’으로 들어서는 길이 보인다. 소나무 숲 속 길은 다소 기복이 심하지만 산길이 뚜렷하고 솔 향이 그윽하다.
잠시 후 우측 산자락이 훤해진다. 맨몸으로 드러난 곳에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려고 사방공사를 한 흔적이 보인다.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지나면 다시 송림 숲이 펼쳐지고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이면 복내면 내동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거의 대로 수준이다.
염씨 가족묘와 314m봉을 지나면 정상부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멀리 남쪽으로 초암산이 보이고 동쪽으론 조계산이 보인다. 벤치가 설치된 쉼터에서 중식을 하고 비탈길을 따라 올라서면 오른쪽 북사면이 온통 철쭉 밭인 작은 동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2개의 바위가 있는 곳에 올라서면 조계산과 모후산, 북쪽의 무등산이 아련하다. 등산을 한 지 2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해마다 5월 10일을 전후하여 이 일대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정상부에 약 3만여㎡의 철쭉 군락지가 펼쳐져 있는데 전국 각지의 철쭉들이 연분홍색을 띠는 데 반해 이곳은 진한 선홍빛을 띠고 있다. 철쭉 동산을 통과하면 헬기장이 있는 드넓은 안부다. 개기재에서 올라오는 호남정맥 길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몇 개의 벤치 시설물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철쭉이 훨씬 운치가 빼어나고 아름답다.
헬기장을 지나 150m를 오르면 계당산 정상이다. 정상석 대신에 등산 이정표가 정상을 표기한다. 주암호 뒤편으로 조계산, 존재산, 제암산, 사자산, 화악산, 두봉산, 촛대봉, 태악산 등이 차례대로 펼쳐지는 걸 볼 수 있다.
◆신라의 명작, 철감선사탑비
호남정맥 길은 좌측이지만 쌍봉사로 내려가는 길은 우측이다. 내림길 주변으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고 20여 분이면 임도와 만난다. 임도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넓은 임도를 계속 따른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나타나도 무조건 큰길을 따른다. 임도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길이 180°로 꺾어지는 지점을 통과해 5분이면 임도를 버리고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쌍봉사 입구가 있는 843번 지방도까지는 숲이 우거진 등산로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가 조금은 거칠다. 지방도를 만나 좌측으로 5분이면 우측에 쌍봉사가 보인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있는 쌍봉사(雙峰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져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며 선사의 도호(道號)가 ‘쌍봉’(雙峰)이라 절 이름을 쌍봉사라 지었다고 한다.
절의 특징이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찰은 대웅전 건물이 가장 크고 웅장하지만 쌍봉사의 대웅전은 폭이 조금 좁게 느껴진다. 총 높이가 12m로 대웅전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3층 목탑의 모습을 전하는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보물 제163호로 지정돼 있었지만 1984년 4월 초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원형대로 복원한 아픔이 있다.
문화유적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쌍봉사 철감선사부도(국보 제57호)와 철감선사부도비(보물 제170호)는 꼭 봐야 한다. 쌍봉사 본관 좌측 윗부분 20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부도로 평가된다. 석조 부도 중 가장 기묘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868년(경문왕 8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의 작품으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만 남아 있으나 그 조각의 우아함은 당대의 명작이라고 한다.
복내면에서 등산을 시작, 계당산 정상에서 철쭉을 즐기고 쌍봉사로 내려서는데 약 9㎞의 등산 거리에 점심시간 포함,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조금 짧은 등산을 계획한다면 호남정맥 개기재에서 등산을 시작, 복내면에서 완성해도 된다. 쌍봉사의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은 있으나 지루한 임도 대신에 순수한 등산로를 고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교통이 편리해 대구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도 오후 7시쯤 충분히 귀가할 수 있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경유해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다음, 광양에서 내렸다가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다. 보성IC에서 내려 복내면사무소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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