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법화원 [赤山法華院]
중국 산동성 영성시(榮成市) 석도진(石島鎭) 북부의 적산(赤山) 남쪽기슭에 위치해 있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서기 823년 신라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에 거액을 들여세운 불교 사찰로 이는 당시 적산인근에 위치한 신라방, 신라촌에 살던 동포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이국땅에서 신앙의 힘으로 의지력을 북돋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법화원은 상당시간동안 소실된 상태였다가 지난1988년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묘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중건되었는데 산의 남쪽을 기대고 앉아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보전 안에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석가모니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다.
1994년에는 한중우의를 더욱 돈독히 한다는 취지하에 장보고기념탑이 세워졌는데 김영삼 전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더불어 2007년 장보고 기념관도 개관하여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는 중국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고 세워진 최초의 외국인 기념관으로, 장보고의 출생, 무령군에서의 활약상 법화원 건립 등 적산에서의 활동, 신라 귀국과 최후, 장보고의 재평가와 한중교류현황이라는 주제하에 발굴된 유물 1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 때 당(唐)나라의 산둥반도[山東半島]와 장쑤성[江蘇省]등 신라인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는 신라인의 집단거주지인 신라방(新羅坊)이 있었으며 이곳에 세운 사찰을 신라원(新羅院)이라 하였다.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통일신라 흥덕왕(826∼836) 때 장보고(張保皐)가 신라인 집단거주지였던 산둥반도 적산촌(赤山村)에 운 사찰로서 '신라원' 중 가장 유명하였다.
장보고는 재당시절 적산지방에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당나라 무령군(武寧軍)의 소장(少將)으로 있을 때(832년) 적산법화원을 창건하였다. 이 사찰은 1년 수확량이 500섬이나 되는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건립된 것으로, 장보고는 이를 통해 향후 무역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 거점인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 처였다.
이외에도 신라와의 연락기관 역할을 하였고, 당나라로 건너가는 신라의 승려는 물론 일본의 승려들도 이 곳을 거쳐가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승려 엔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신라 불교의 의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의 승려로서 신라의 승려를 시봉(侍奉)하여 스승으로 섬기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승려 엔닌 일행이 머물다 돌아가 쓴 이 기록 때문에 한때 '일본의 절'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한중수교 이후 이를 바로잡고 적산법화원 경내에 장보고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적산법화원은 많은 재력을 지녔으며 이름있는 승려들이 상주하였다. 불교의식인 강경회(講經會)를 정기적으로 일년에 2차례씩 개최하였으며 이때 행해진 강경의식(講經儀式)에서는 신라와 당나라의 불교의식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여름에는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겨울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론하였는데, 그때마다 많은 신라인들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무종(845년)때 불교 탄압으로 파손되었으나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의 저술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의 내용을 근거로 1998년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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