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전남 고흥 조계산
한반도의 남단 고흥반도에는 바위산들이 즐비하다. 암봉들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팔영, 천등, 운암, 마복, 두방, 첨산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번거롭다. 거기에 또 하나의 바위산을 더하고자 한다. 이름은 조계산. 해발 461.3m로 이제 막 태고의 정적에서 깨어나 웅비를 서두르고 있다. 아직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전문 산지에 소개되거나 다룬 적도 없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웬만한 산에 대한 등산기록과 자료는 있지만 조계산에 대한 자세한 산행기록이 거의 없다. 바닷가에 위치한 400m급의 산은 내륙지방의 700~800m급과 맞먹는다. 그럼에도 10만분의 1지도에 겨우 이름만 등재됐을 뿐이다. 아직 무명(無名)의 산이라 등산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산 소개보다는 천등산을 연계한 등산로를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오전 11시, 등산 들머리인 금사리와 금탑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금탑사 쪽으로 길머리를 잡고 임도를 거슬러 오른다. 곧이어 길이 좌측으로 휘어지고 삼지닥나무가 활짝 웃으며 이방인을 반긴다. 호젓한 산길이 여유롭다. 20여 분을 오르니 절이 보이고 좌측으로 천등산 등산로가 입을 벌리고 있다. 등반은 잠시 미루고 우선은 비자나무 숲과 금탑사를 둘러본다.
◆비자나무 숲 `금탑사 둘러보고 천등산으로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눈과 마음이 시원하고 청량해진다. 비자나무는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수종이다. 이곳의 비자나무는 수령이 100년 넘은 것들이다. 푸른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한 것이 특징. 천연기념물 제2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탑사는 천등산 동쪽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25년 동안 스무 번 이상 천등산을 찾았지만 급탑사를 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등산의 기점이나 날머리로 이용하려 해도 천등, 월각, 별학산 중 2개의 산만 연계가 가능해, 등산시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삼성각, 종각, 명부전,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고, 마당에는 5층 석탑 세존진신사리탑과 커다란 백일홍나무가 서있다.
비구니 사찰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갈하다. 경내 산책을 마치고 되돌아 나와 천등산을 오른다. 봄은 벌써 눈앞에 와 있다. 공기가 상큼하다. 절에서 올라온 지 15분여 정도가 되었을까. 우람하고 멋진 바위 무더기가 우리들을 반긴다. 상여바위다. 조망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위를 오른다. 나지막한 주변의 산과 올라야 할 능선이 교차되고 월각산에서 넘어오는 되넘이재도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다고 해서 천등산(天登山)일까. 천 개의 등불이 켜진 것 같다고 천등산(天燈山)일까. 넓은 헬기장이 있는 천등산 정상을 한 시간 만에 올랐다. 탁 트인 사방은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소록도`거금도 그림 같은 해안 풍경 눈앞에
이제 워밍업은 끝났다. 오늘 목적지 조계산을 조망하고 거리를 가늠한다. 서쪽으로 난 거친 바위의 천등산 암릉을 탄다. 위압적인 능선 너머로 별학산과 소록도가 보이고 거금도가 그림 같은 해안풍경을 만들어 낸다. 갈림길이 나타났다. 좌측은 송정리와 철쭉동산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곧바로 난 길은 우리가 가야 할 조계산 등산로다. 이윽고 길은 우측으로 뚝 떨어진다.
염소바위 주변에서 중식. 간혹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있어 고흥지맥을 타느냐고 물으니 뜨악한 표정이다. 송정리로 하산해야 할 사람들이 천등산 암릉에서 무심코 우리들을 따라나섰다가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점심을 마치고 잔잔한 능선을 오르내린다. 등산로가 품결처럼 아늑하다.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바위지대가 나타나 멋진 전망대를 만든다. 안치재를 통과하고 두어 개의 봉우리를 더 넘으니 미인치다. 조계산 개념도에는 대형차량도 넘나들 수 있는 고갯길로 그려져 있지만 잘못된 지도다. 차량은 오를 수 없는 고개다. 우측의 작은 임도로 20여 분 이상 내려가야 포장도로를 만날 수 있다. 체력이 약한 산객들은 여기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조계산 오름길은 지금까지의 등산로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 등산로가 희미하다. 가뭄에 콩 나듯 지나간 등산객들의 흔적을 더듬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닐 만한 길이다. 통신시설을 통과하고 조계산이 가까워지자 앞서 간 사람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우람한 바위들이 도열해 시선을 끌어당긴다. 마치 암봉들을 사열하는 사령관이라도 된 기분이다.
◆팔영산`운암산 등 주변 명산들 산너울 넘실
조계산 정상 주변은 삼면이 천길 벼랑이었다. 거대한 바위로 형성된 정상에는 그 흔한 표지석도 없다. 사위는 탁 트여 막힘이 없어 조망이 좋다. 동쪽으로는 해창만과 어울린 팔영산이 아득하고, 지척의 동북에는 운암산이 손짓한다. 남쪽으로는 대룡지 너머 천등산이 철옹성처럼 다가온다.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서 내림길 북면은 아찔한 절벽. 그곳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잡목들이 막아선다. 사람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틈만 준다. 제멋대로 가지를 친 찔레줄기들이 가시를 돋우고 잡아당긴다. 무척이나 더딘 길을 한 시간쯤 내려서니 원봉림 마을이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시간을 재보니 총 거리 11㎞, 5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을의 공동 빨래터를 통과하니 매화가 만발했다. 마을 입구에서 조계산 방면을 올려다본다. 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아담한 마을의 전경이 평화롭다. 비록 힘은 들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산이었다.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꼭 긴 바지와 긴 팔소매가 있는 등산복을 착용해야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을 남들보다 먼저 가본다는 것은 특권이다. 진달래가 활짝 핀 4월쯤이 이 ‘특권’을 향유할 최적의 시기가 될 것 같다.
◆교통=구마고속도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순천에서 내려 벌교-고흥으로 진행. 15번 국도로 나로도 방면으로 가다가 금탑사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맛집=▷평화식당(고흥군청 앞) 061)835-2358, 50년 전통의 한정식 집. ▷소문난 식당(고흥군청 주변) 061)833-7787, 서대회무침, 서대회비빔밥.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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