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부여 천보산
작지만 아름다운 산! 그 진가를 확인하고자 낯선 곳 오지까지 산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름 없는 생소한 산들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부여 천보산(天寶山`325m)과 천덕산(天德山`343m)도 그 중의 하나다. 서대산과 대둔산을 제외하고 충남의 산들은 대체로 낮아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속살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등산의 가치를 높이는 비장의 무기가 있는 법이다.
◆최영 장군 왜구 물리친 홍산대첩 무대
천보산은 높이가 300여m에 불과하나 주등산로가 보기 드문 암질의 암릉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보너스로 주어지는 천덕산 또한 작은 공룡능에 견줄 만큼 크고 작은 봉우리가 연속으로 이어져 거친 숨을 토해내게 만든다. 산자락에는 고려 때 최영 장군이 왜구들을 물리친 홍산대첩의 무대였던 구룡평야와 태봉산성이 있어 역사적 흥미까지 불러일으킨다.
천보산에 등산로가 개설된 것은 2004년 6월경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홍산면에서 군 예산으로 설치했다. 지역 출신 산꾼들에 의해서 알음알음으로 알려져 월간지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대구를 출발한 지 3시간여 만에 천보산 등산기점인 상천저수지에 도착한다. 대부분 등산지도에는 저수지 중간에서 오른쪽 산으로 등산로가 표기되어 있지만 잘못된 지도다. 저수지 조금 못미처 ‘상천유원지 문녕기’라고 쓰인 안내판에서 시작한다. ‘문녕기’라는 말은 이곳 방언으로 저수지 댐을 일컫는다. 우측 정자로 연결되어 오르는 길이 천보산 등산로다.
10여 분 정도 올랐을까. 산길은 바위지대로 들어서고 때묻지 않은 바위들의 신비한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곳 바위들은 진안 마이산처럼 마치 자갈 콘크리트를 연상케 한다. 1억 년이 넘었다는 ‘타포니현상’이다. 이곳이 태초에는 바다 밑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위지대를 4, 5분 오르니 급경사에 굵은 밧줄이 내걸린 날카로운 릿지길이 나온다. 작은 산이라는 편안함 때문인지 바위능선들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다가온다. 예사롭지 않은 암릉으로 이어진 날등도 타게 되고 양쪽 절벽 사이에 가파르게 걸린 철사다리를 오르기도 한다. 이윽고 두 번째 철사다리를 지나 완만한 능선에 들어선다. 이제야 근육을 풀고 한숨 돌린다.
바위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등산로를 따르기보다는 자기 나름의 바위코스를 만들어 세미클라이밍을 즐겨도 좋을 듯싶다. 수직절벽에 걸친 세 번째 철사다리를 통과하니 뾰족한 암봉을 이룬 대문바위 꼭대기가 나온다. 아마도 천보산 등산로 중 최고의 절경지대가 아닐까 싶다.
◆부여 산들의 황홀한 파노라마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대문바위 꼭대기에서 남쪽을 내려다본다. 작은 산이 펼쳐내는 조망이 이처럼 대단할 수 있을까. 크고 작은 부여의 산들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지나온 바위능선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대문바위에서 완만한 바위길을 10여 분 더 오르니 천보산 정상이다. 정상에서도 남서쪽으로 비홍산, 서쪽으로 아홉사리고개와 천덕산, 북서쪽으로 월명산 등이 조망된다. 천보산에서의 하산로는 북릉을 타게 된다. 북릉으로 조금만 가면 삽티고개, 계향고개 삼거리에 닿는다. 푯말 왼쪽 방면 내리막을 따라나서면 길은 오른쪽 밤나무 밭으로 이어진다. 다시 5분 정도 내려가면 613번 지방도인 삽티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하산하기에는 등산거리와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 북쪽 오르막으로 2, 3분 올라가니 지티고개다. 고개에서 좌측 절개지로 올라서면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산소 주변에서 조망을 즐기며 중식을 해결한다.
공동묘지에서 서쪽 오르막 능선으로 오른 후 다시 내려서니 임도다. 임도 오른쪽은 월명산 금지사(金池寺), 왼쪽 내리막길은 윗삽티~상천저수지 문녕기로 가는 길이다. 천덕산을 가기 위해 곧장 능선을 따른다. 월명산 가는 능선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까지는 20여 분 소요된다. 등산을 시작하고부터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깔딱고개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가파른 오름길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더 넘고서야 천덕산에 올랐다. 글쎄 조망은 별로다. 등산지도에도 이곳이 천덕산이라 표기되어 있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363m봉이 천덕산 정상이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추론해 본다. 봉우리도 높고 조망도 더 낫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363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 비탈진 사면길로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갈림길에서 200여m 정도 더 올라야 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큰 오름길 없이 완만한 등산로가 푸근하게 연결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홉사리고개에 도착하면 등산일정은 끝이다. 지금까지 걸었던 총 등산거리는 약 8.5㎞로 3, 4시간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주변엔 홍산향교, 부소산성 등 볼거리
언제부턴가 산은 깨달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정복하고 올랐다는 숫자의 개념 속에 포함된 것 같아 다소 안타깝다. 산의 명성과 높이에만 집착해 등산의 본래 의미를 간과한 채 허명만 좇는 것은 아닌지 오늘 천보산, 천덕산 산행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주변에 도지정문화재 자료인 홍산 동헌, 홍산 객사, 만덕교비, 형방청, 흥양리 오층석탑, 상천리 마애불입상, 홍산향교 등 볼거리가 많다. 그리고 차량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부소산성에 들러 백제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낙화암과 고란사를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교통=경부고속도로 대전, 회덕JC에서 호남고속도 광주 방향 진행, 유성JC에서 대전-당진 고속도로로 가다가 공주JC에서 공주-서천고속도로 갈아탄다. 서부여IC에서 나와 4번국도를 타고 홍산으로 진행하다 413번 지방도(우측)로 진행, 상천저수지 입구에서 하차한다.
글`사진 지홍석 san3277@hanmail.net
(수필가`산정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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