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태백 연화산
강원도 태백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고원도시이자 산악도시. 1,000m가 넘는 산과 봉우리가 즐비하다. 어느 곳에서나 장중한 산악미와 화려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태백시는 해마다 열리는 태백산 ‘눈꽃축제’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아무리 좋은 경치와 눈꽃이라도 쾌적한 조건과 환경이 담보될 때 제 가치를 발하는 법.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로 등산로에서 두세 시간 이상 정체되면 짜증은 치솟고 인내는 바닥에 놓이기 마련. 거기다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차량, 하산지점에서 버스를 찾느라 진을 다 빼고 나면 등산의 즐거움보다는 심신이 먼저 지쳐버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 대안으로 찾게 되는 산이 바로 태백 연화산이다. 우선은 사람이 몰리지 않아 호젓한 등산을 즐길 수 있고 고산의 장쾌한 주능선 파노라마와 고원의 도시 태백시 전체를 한번에 조망할 수 있다. 태백`함백`대덕`백병`두타`청옥`오대`계방산 등 주옥같은 명산들을 차례로 조망하는 맛도 일품이다.
◆연꽃 품성 간직한 산, 호젓한 등산로 일품=산의 높이는 1,171m, 타 지역이라면 명산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만한 높이다. 산 이름 또한 순결`군자`신성`청정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연꽃이니 호감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연꽃이 좋은 이유 10가지 중에 면상희이(面相喜怡)라는 말이 있다.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는 뜻이다. 처음 연화산을 보았을 때 느낌 또한 그랬다.
몇 년 전 태백산에서 차량과 사람에 시달리다가 혼이 나간 상태에서 앞에 우뚝한 산이 보였는데 그 산이 바로 연화산이었다.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했는지 그 감흥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산행 시작점은 송이재. 황지에서 통리로 넘어가는 38번 도로의 고개다. 옛날 이곳은 짐승들이 다니는 길목이라 사람들이 짐승을 잡으려고 곳곳에 송이칼(손오칼)을 설치해 놓았다고 해서 송이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우측으로 커다란 표지석과 등산안내도가 보이면 송이재 표지석 뒤 임도를 잡아 산으로 오르면 된다. 인적이 드물고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길을 찾아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주황색 바탕에 흰 글씨로 ‘연화산’이라 표시된 이정표가 등산로 옆에 앙증맞게 세워져 있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좌우 조망이 서서히 열린다. 등산 시작 30분 만에 첫 번째 바위전망대를 만나 태백시와 함백산의 조망을 즐긴다. 35분여 만에 대산아파트와 대림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 길은 지난해 태백시가 둘레길로 조성한다고 발표해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곳. 둘레길의 명칭은 ‘고원 700산소길’이다.
연화산 둘레길은 총 16㎞. 대산아파트와 대림아파트 뒤편 연화산 쉼터에서 시작해 치유의 숲~체험의 숲~오름뫼~연화산 유원지~검둥골~송이재~연화산 쉼터로 돌아오는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해발 680m에서 900m의 고도로 이뤄져 건강을 겸한 조깅과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태백시는 태백국유림관리소와 공동으로 오는 2015년까지 연화산 둘레길과 연계되는 생태탐방길을 추가로 조성, 총 24㎞ 구간의 ‘명품 산소길’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설산 파노라마에 흠뻑=고도가 높아질수록 차가운 기온 탓인지 가시거리가 점점 뚜렷해진다. 조망의 멋이 최고조에 달한 건 등산 시작 1시간 10여 분 만에 연화산 정상 못 미쳐 오른 암벽봉우리에서였다.
일망무제가 따로 없다. 막힘 없이 전개되는 남쪽과 서쪽의 조망에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밀려든다. 카메라를 쥔 손이 멈출 줄 모른다. 고층아파트들이 성냥갑처럼 보이고 실핏줄처럼 연결된 도로와 건물들이 내밀한 속살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태백시를 감싸는 함백산과 중함백, 은대봉과 금대봉, 대덕산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백산이 우람하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금강산의 절경과 다툰다는 인근의 백병산(1,259m)을 비롯해 저 멀리 두타산과 청옥산 고산의 준봉들이 서열을 다투며 파노라마를 그린다.
지척의 연화산 정상의 이름은 옥녀봉(玉女峯)이다. 먼 옛날 바닷물이 올라와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옥녀가 피난하고, 통리의 유령산(우보산) 갈미봉의 갈미(삿갓의 강원도 방언)를 쓴 남자도 이곳에서 물을 피했는데 나중에 물이 빠진 다음 둘이 만나 세상에 자손을 퍼뜨렸다고 한다.
봉우리 서쪽기슭에 옥녀가 머리를 풀고 엎드려 있는 형상의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라는 명당이 있다. 황지연못이 물대야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옥녀봉 정상에 연화산 표석이 있고 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가 있다. 정상 바로 밑에 산불초소가 있다.
투구봉으로 가는 길은 내림길로 가파르다. 50여 분 만에 투구봉에 도착하니 정상에 버금가는 조망처가 숨겨져 있다. 함백산과 태백산 쪽 조망은 정상보다 뛰어나다. 봉우리가 아찔한 바위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그곳에 비녀바위가 있어 비녀봉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가 양쪽으로 튀어나와 흡사 비녀처럼 보이는 것이다.
투구봉을 돌아 나와 20여 분 만에 늦은목이재에 도착한다. 길은 우측으로 떨어지고 임도를 가로질러 계곡으로 떨어지면 약수터다. 5분여 정도 내려서니 여성회관이 나온다. 화장실 시설이 깨끗하다. 등산 중 흘린 땀을 간단하게 씻을 수 있다. 상장초교를 통과하니 35번 국도다.
◆송이재~정상~여성회관 돌아오는 10리 코스 인기=송이재에서 시작해 연화산을 오른 후 여성회관으로 하산하는 코스의 거리는 약 4㎞ 정도다. 등산 소요 시간은 3시간 정도. 옛날엔 연화봉이라 불렀는데 최근에 와서 연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산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문곡역이 최고 포인트. 역 부근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연꽃 모습이라고 한다.
하산로 입구 연화산 유원지엔 충혼탑, 연화폭포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인적이 드물다. 겨울에 찾으면 설산의 장쾌한 조망을 맛볼 수 있고 5, 6월 봄에 찾으면 야생화 산행을 겸할 수 있다.
운동량이 조금 부족하다면 인근에 낙동강 발원지 황지를 찾으면 된다. 연못의 둘레는 100m.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하루 5천t의 물이 용출된다. 그 외 용연동굴과 돌아오는 여정에 구문소를 잠시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오전 7시에 대구를 출발해도 오후 8시 이전에 귀가할 수 있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