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아산 도고산·예산 덕봉산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과 실제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오래된 관습과 섣부른 통념에 빠지다 보면 사람들은 지레짐작하고 단정해 버리기 일쑤다. 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산의 높이가 낮거나 등산 거리가 짧으면 그저 그런 산으로 평가절하해 버린다.
산은 언제나 너른 품을 열어 등산객들을 포용할 뿐 말이 없다. 그래서 산은 가서 느끼고 체험하고 인식되기 전까지는 미답의 영역일 뿐이다. 산의 높이는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 우량이나 품평의 척도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산이 있다. 바로 충남 아산의 도고산(482m)과 예산의 덕봉산(473.3m)이다. 높이도 낮고 등산 거리도 길지 않다. 그러나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어느새 충청권 산의 숨은 진주와 만나게 된다.
◆덕봉산-도고산 9㎞ 길 5시간이면 충분=등산을 떠나기에 앞서 산을 검색하고 드러난 등산로를 살펴본다. 도고산 하나를 선택해 다녀오기에는 왠지 운동량이 부족할 것 같아서다. 덕봉산과 연계하기로 하고 계획을 잡지만 이도 여의치 않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시전리 도고중`고등학교를 들머리로 삼아 도고산 정상에 오른 후 원점회귀했거나, 덕봉산을 거쳐서 ‘수철리’와 ‘간양 2리’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일행은 두 산을 종주하기로 하고 덕봉산 입구인 간양리를 산행 들머리로 잡는다. 처음 시도하는 코스기에 등산로는 확실치 않았지만 현지에서 부닥쳐 보기로 했다. 예산`수덕사 IC를 빠져나와 간양 2리 마을회관(농업인 건강관리실) 앞까지 대형버스의 진입과 주차는 가능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덕봉산으로 올라가는 뚜렷한 등산로 표시가 없어 애를 먹는다. 다행히 마을 앞 개천의 우측임도로 5분쯤 진입하니 산 초입에 이정표와 리본이 많이 달려 있었다.
마을에서 덕봉산 정상까지는 약 1.7㎞에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오름길 내내 등산로 좌우측에는 송림이 빼곡하다. 덕봉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고 대신 삼각점과 이정표(신례원역 2㎞`수철리 0.85㎞`도고산 정상 3㎞)가 세워져 있다. 누군가 검은 매직으로 세로로 덕봉산이라 써 놓았다.
옛날에 난리를 당했을 때 이 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 모두가 무사해 ‘덕본 산’으로 불리다가 후에 덕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10월 1일이면 정상 부근 산제당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촬영을 하면서 주변의 조망을 즐긴다. 남쪽 정면으로 안락산(424m)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토성봉과 용굴봉(415m)이 차례로 도열한다. 용굴봉 가까이에 자리 잡은 탈해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 계곡 안자락에 수철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꽁꽁 얼었는지 하얗게 눈이 덮여 있다. 계곡에서 절까지 걸어서 오르려면 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것 같다.
◆솔숲 사이로 걷는 도고산 능선 ‘쾌적’= 덕봉산 정상을 지나 100여m쯤 가니 길이 두 갈래다. 도고산 가는 길은 우측 아래로 떨어지듯이 이어진다. 송림 사이 흙길로 길게 이어진 주능선이 곡선을 그린다. 도드라진 능선의 좌우는 급경사라 자연성벽이 따로 없다. 근래에 이처럼 아름다운 능선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을까. 20여 분을 걷고 나니 우측의 한 면이 탁 트인다. 전망바위가 있고 조망이 기가 막힌다. 여기서 점심을 해결한다.
능선의 음지에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다. 전망이 좋은 곳 하나를 더 지나자 다시 송림이 이어진다. 이윽고 거대한 송전탑이 있는 임도가 나타난다. 이정표가 90도 각으로 세워져 있는데 지도상에는 농운리 갈림길로 표기되어 있다. 좌측 임도가 도고산 가는 길이다. 산의 주능선 앞쪽에 나있는 임도는 도고산 정상부 가까이 이어져 있다. 능선에 올라 주능선 길을 탈 수도 있다. 길은 생각보다 푹신하다. 삭막한 벌거숭이 길이 아니라서 청량한 분위기도 난다. 북쪽 전방으로 도고산이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우뚝하다.
30여 분을 걸으니 임도가 둘로 나뉜다. 직로인 우측 길로 진행하니 능선으로 등산로가 연결된다. 능선 안부에서 좌측으로 15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도고산 정상이다. 2단의 돌로 쌓은 봉화대 터 위에 커다란 도고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단 아래에 세 군데의 등산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다. 날씨가 조금만 맑았다면 내포만의 조망과 주변 산군의 파노라마가 일품일 텐데 흐린 날이라 조금은 아쉽다. 그나마 근거리의 조망은 양호하다. 남쪽으로 덕봉산이 우뚝하고, 북편으로는 국사정(國師亭) 너머 하산해야 할 주능선과 도고저수지가 뚜렷하다.
도고산 내림 길은 덕봉산 능선 길보다 더 기품이 있다. 올망졸망한 봉우리의 연속이라 등산로가 아기자기하다. 적당하게 우거진 송림 사이로 꿈결처럼 등산로가 이어진다. 국사정을 내려서기 전까지는 돌길이지만 칼바위를 통과하면서부터 길은 안락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하염없이 걷고 싶은 그런 길이다. 동막골 갈림길에서 332m봉 오름길이 잠시 가파른 계단 길이지만 통과하면 다시 운치 있는 등산로로 이어진다.
◆성준경 고택`도고온천 등 즐길거리=정상에서 도고중`고교와 도고저수지가 있는 시전리 등산 날머리까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내림 길 2.8㎞ 치고는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하산 후 다소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시전리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194호인 성준경(成俊慶) 고택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고택 입구에 수령 360년생 은행나무가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간양 2리에서 등산을 시작해 덕봉산, 고산을 거쳐 시전리로 하산하는 데 걸리는 총 거리는 약 9㎞, 중식 시간을 빼고도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덕봉산의 들머리인 간양 2리에서 등산로 입구를 찾을 자신이 없다면 시전리에서 원점회귀하거나 역순으로 등산을 해도 된다. 참고로 내비게이션으로 ‘도고산 간양 2리’를 목적지로 삼았는데도 엉뚱한 방향으로 차를 안내해 기사가 조금 애를 먹었다. 사전에 지도책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신례원을 통과해 임선교를 넘으면 네거리다. 우회전해서 예산 방면으로 진입하면 좌측에 한자어로 간양리라고 적혀 있다.
도고중`고에서 도고온천지대까지 차량으로 10여 분 정도다. 가곡교 건너기 전 우측 박정희 대통령 별장이 있던 곳에 도고온천 대중사우나탕이 있다.(요금 5천원). 주변에 식당이 있어 온천으로 몸을 풀고 간단한 식사와 하산주도 가능하다.
산의 높이가 400여m라지만, 바다와 가까워 해발이 낮은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 그 때문에 내륙 산간의 700~800m급 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맑은 날이면 산의 정상부에서 북으로 아산만과 좌우의 내포 땅, 삽교천이 보이고 멀리 천안의 광덕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북쪽에서 뻗어와 남쪽을 지나 서북쪽 충남 가야산으로 나아가는 금북정맥의 뭇 산들을 조망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산 주변에 도고저수지와 수철저수지가 있어 주말이면 등산객보다 태공들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고속도로가 사면팔방으로 뚫려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도고온천에서 대구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것도 도고산의 매력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