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강원도 횡성 태기산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비로봉, 용문산, 유명산을 지나 양평의 두물머리(양수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 이 기맥은 계방산을 지나 청량봉에 이르면 북서쪽으로 춘천지맥을 분가시키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삼계봉(1,105m)에 이른다. 삼계봉에서 남동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영월지맥이고, 이 능선에서 약 5.5㎞ 거리에 자리 잡은 산이 바로 태기산(泰岐山`1,259m)이다.
태기산은 강원의 횡성군 청일면,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전형적인 육산. 영서지역의 고원지대를 지탱하는 버팀목 산줄기에 위치해 장중한 산악미가 일품이다. 1,000m가 넘는 덕고산(1,135m)과 봉복산(1,034m)과 이웃해 그 위세를 더하고 횡성군 산 중에서 해발이 가장 높다. 회령봉, 대미산, 청태산 등이 주위에 있고 능선은 남북방향으로 뻗어있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흥정천으로,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유동천으로 각각 흘러들며 남쪽 사면에서 주천강이 발원한다. 과거에는 산기슭에 화전민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인근 마을로 분산`정착했다.
◆횡성`평창 경계에 위치, 장중한 산악미 일품=들머리인 신대리는 산자락마다 지천으로 자생하는 시누대(산죽)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30여 년 전까지 농한기를 이용해 시누대로 약 2만 개 이상의 복조리를 생산해 원주와 서울 등지에 공급했었다고 한다.
자가용이나 대형버스로 등산에 나설 땐 신대리 버스 종점 삼거리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송복사 입구인 ‘숲속의 집’까지 진입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50여 분을 더 걸어야 한다.(산행지도에 대형버스 통행가능하다고 기록됨. 좁은 임도여서 대형버스는 조심해야 한다)
숲속의 집 주차장은 예상외로 넓다. 삼거리에 안내판 2개가 보인다. 등산로 오른편 도로로 다리를 건너면 태기산 등산로 안내판(정상 4.6㎞ 푯말)이 있다. 15분 정도 접어들면 ‘성골민박’이 보이고 민박집 좌측으로 해서 사방댐 밑 징검다리를 건너면 사방댐 좌측으로 등산로가 연결된다. 산죽지대를 통과하면 ‘정상 3.6㎞’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고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올라 지능선에 다다르면 벤치 하나가 반긴다. 양측이 낭떠러지인 깎아지른 지능선 길을 몇 군데 통과하면 다시 이정표가 나타나고 ‘정상까지 4.6㎞’라고 적혀 있다.
이정표는 참고사항일 뿐. 액면 그대로 믿고 표시된 거리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산 중턱이라 숲은 우거지고 산자락에 눈이 두텁다. 군데군데 돌무더기가 보인다는 건 산성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여 만에 태기산성터에 도착하게 된다. 공터에 벤치 2개와 태기산성 석비(石碑)가 있다. ◆트레킹로`잣나무 숲`풍력발전기 등 테마코스=석비에서 5분 정도 오르면 절개지 임도다. 횡성군이 야심 차게 기획한 해발 800m의 ‘태기산 테마임도’로, 둔내면 삽교리 태기산에서 청태산 간 16㎞ 구간 중의 일부다. 내부 공모를 통해 ‘에코 800 태기산 트레킹로’로 명명하고, 지난해 1억7천만원을 들여 조성했다. 눈이 많이 쌓인 탓에 능선으로 접어들지 못하고 좌측의 임도를 따른다. 산자락에는 잣나무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10℃의 냉기에도 푸른 생동감을 맘껏 뽐낸다. 조금은 지루한 길을 30여 분 따르면 드디어 산머리 쪽으로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2시간여 만에 양두구미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이정표를 만난다.
예전 분교 터에 풍력발전기 20기를 관리하는 풍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태기산 정상 방면 도로로 10분 정도 오르면 삼거리. 일부 산객들은 점심을 시작하고 몇 사람은 도로를 따라 ‘태기산 정상’이라고 쓰인 곳까지 오른다.
태기산 정상엔 군부대가 있다. 당연히 출입이 통제된다. 다시 오른쪽 길로 오르면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입구. 조망이 일품이다. 근접한 휘닉스파크는 물론 태백산, 함백산, 청태산 등 근처 산줄기들을 모두 굽어볼 수 있다. 하산코스는 점심을 먹었던 정상 부근 삼거리로 되돌아와 내리막길로 잡는다. 눈이 무릎 높이만큼 쌓인 등산로는 산허리를 평탄하게 감아 돈다. 가까운 곳에서 산새 소리만 화음처럼 정적을 가를 뿐 인적은커녕 임도에서 보였던 짐승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다.
30여 분 만에 드디어 낙수대 터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조금은 가파른 길을 한참을 내려서면 낙수대(落水臺). 옛날 봉복사 말사였던 낙수암(落水庵)이 있었던 절터다. 오래된 묘 1기도 보인다. 이 묘 벌초를 먼저 하는 사람이 산삼을 캔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음력 8월이면 심마니들이 서로 먼저 벌초하려고 다툰다고 한다. 이 절터 서쪽 수직 절벽 아래에 높이 13m의 폭포가 걸려 있으나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폭포도 옛날 태기왕 시절 왕궁 귀족들이 낚시를 즐겼다는 전설이 전한다.
◆산 곳곳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 전설 서려=낙수대 내림길이 매우 가팔라 조심해서 내려선다. 눈 쌓인 주전골 계곡과 큰 성골 내림길이 얼마나 깊은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산을 시작한 지 1시간 30여 분 만에 ‘하늘 아래 첫집 펜션’을 만난다. 거기서부터 ‘숲속의 집’까지는 임도다. 좌측에 산마루에 있는 산양바위를 보면서 15분 정도 내려서니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일행을 맞는다. 태기산은 오염에서 자유로운 덕에 사계절 청정풍광을 자랑한다. 봄철에는 철쭉, 여름철에는 시원한 계곡, 가을에는 단풍, 겨울은 설경으로 유명하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 쫓겨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때문에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을 비롯해 집터와 샘터가 수림지대를 따라 흩어져 있다. 옛날 가뭄에 기우제를 지낼 때 200근 이상 되는 돼지를 산 채로 둘러메고 태기산성에 올라가서 목을 따면 그 피가 충천하며 비가 쏟아져 내렸다는 전설도 있다.
신대리 송덕사 입구(작은성골)에서 등산을 시작, 원점 회귀하는데 총 11.7㎞, 4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있으나 갑자기 폭설이 내려 시계가 불투명하고 등산로에 눈이 쌓여 잘 드러나지 않을 때는 전문 산악인을 대동할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량을 양두구미재에 주차하고 정상 주변까지 왕복 등산을 하는 게 좋다. 자칫 산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으면 계곡이 워낙 깊어 낭패를 면하기 어렵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