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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포토산행기

by 산정(지홍석) 2014. 11. 1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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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華嚴寺)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스님인 연기조사가 창건.

신라 문무왕 17년(677) 에 의상대사가 장육전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으며,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법당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그 후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통해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 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하고 있다.

사찰 안에는 국보 제67호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전통사찰이다.

 

화엄사 창건설화

백제의 한 마을에 살던 노인이 어느 날 산에서 심상치 않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노인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보니 그곳에는 조그만 움막이 있었고, 장엄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 움막에서 천축국(인도)의 승려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는 천축국(인도)에서 불법을 펴고자 인연국토에 왔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에는 ‘연’이라는 짐승을 타고 왔는데, 연은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짐승으로 제 가 교화하여 제자로 삼았으며, 방금 독경한 것은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마을사람들 은 그때부터 그가 연을 타고 다니므로 ‘연기대사’라고 부르며 그에게 법문을 청해듣고 깊은 신심을 얻게 되었다.

연기대사는 자신의 움막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짓고 ‘화엄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지리산 화엄사 일원 

사적 및 명승 7호.

지리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이라고 불리는 민족의 영산으로

산기슭에는 실상사, 연곡사, 화엄사를 비롯하여 많은 절과 유적이 있다.

또한 지리산 일원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는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자락의 남쪽 기슭 계곡에 위치하며

해발 250m 정도의 산간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아름답고 화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화엄종의 맏형격인 큰 절로서 장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1592) 당시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1630년에 각성스님이 지금 남아 있는 건 물의 대부분을 다시 세웠다.

현재 화엄사에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국보 제35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뛰어난 사적 및 명승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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