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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은진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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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정(지홍석) 2021. 8. 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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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 입구, '반야산 관촉사' 현판이 보인다. 
천왕문
윤장대

관촉사 경내

대웅전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
석조보살입상, 일명 은진미륵불로 불린다(보물 제218호)
은진미륵불 우측으로 계룡산국립공원이 조망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4XH722mRo&t=28s 제가 편집한 동영상 입니다

 

 

논산 관촉사 灌燭寺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반야산(般若山)에 위치.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968(고려 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석조보살입상(은진미륵)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법당은 1386(우왕 12) 건립해 1581(선조 14)1674(현종 15)에 중수했으며 1735(영조 11) 다시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석조보살입상(보물 제218)과 석등(보물 제232)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보물 제218호인 석조보살입상은 높이 18.2m인 거불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선조 14)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현종 15) 지능(智能), 1735(영조 11)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解脫門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과 보물 제232호인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拜禮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石門),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몽산법어(蒙山法語)·심우십도(尋牛十圖)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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