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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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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정(지홍석) 2022. 2. 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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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BQb0EhTQRtc 

천불천탑 운주사雲柱寺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로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의 창건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세웠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 모양에 비유, 배를 진압할 물()이 없으면 침몰하기 쉽기 때문에 그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운주곡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워 내실(內實)을 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주사와 도선과의 연관은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비보사상을 바탕으로 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에 고려승 혜명(惠明)이 무리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을 970(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면 운주사는 고려초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30(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서 천불천탑과 석불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84년 제1차 발굴조사 때 '홍치 8'(弘治八年)이라고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1495(연산군 1)4번째 중수가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 초기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폐사된 것을 1800년경에 설담자우(雪潭自優)가 땅에 묻힌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4~894차례에 걸친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 결과 운주사는 늦어도 11세기초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비구니가 수도하는 절로 요사채·종각, 그리고 새로 신축된 대웅전·지장전·승방 등이 있으며, 주변에 91구의 석불(완형 50)21기의 석탑 등이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석조불감(보물 제797)·9층석탑(보물 제796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와불(臥佛) 등이 대표적이다.

 

 

 

#천불천탑 #운주사와불 #불교유적 #석조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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