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남해 호구산
경남 남해 호구산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립공원이라는 타이틀에도 이름이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유를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원래 산 이름은 ‘납산’ 또는 ‘원산’이었다. 산의 북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원숭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원숭이 원(猿) 자와 원숭이의 옛말인 ‘납’자를 사용해 원산 또는 납산이라 불렀다. 후대에 지맥 형태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호구산(虎丘山)이라 불렀고, 송등산, 괴음산을 묶어 1983년 호구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대구에서 출발한 지 3시간여, 삼천포대교를 가로지른 차량이 산행기점인 용문사에 도착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찰 진입로와 주차장 시설이 열악하여 찾아들기가 힘들었다. 요즘은 대형 주차장이 들어서 있어 접근이 쉬워졌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제일 큰 사찰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의 사세(寺勢)가 융성해지면서 근처에 들어섰던 많은 절들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용문사 임란 때 승병 근거지```성철 스님도 수행
임진왜란 때는 승병활동의 근거지로서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 보호받기도 했다. 현재 사찰은 임란 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 문화유적으로는 대웅전과 석불좌상, 명부전, 천왕각과 조선 인조 때 학자 유희경의 시집 촌은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판목 ‘촌은집책판’이 있다. 등산로는 사찰 왼쪽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가면 된다. 이 길은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 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물러 수행을 했다는 백련암으로 이어진다. 절 주위를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와 상록수림들이 막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로 주변의 운치가 한층 싱그럽다. 5분여 쯤 오른다. 오른쪽으로 차밭이 보이고 염불암과 앞뜰의 동백나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대웅전 오른쪽을 돌아 대나무 숲을 지나자 산길은 숲속으로 이어지고, 6, 7분 후 ‘송등산 정상’, ‘원산’을 가르는 갈림길과 만난다. 직등하면 원산으로 가는 지름길. 전망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송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왼쪽 등산로를 택한다.
봄 대기는 청량하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봄도 살랑바람으로 화답한다.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새순들이 싹을 터뜨렸고 군데군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올 진달래는 유난히 곱다. 연분홍빛 군무에 불혹의 나이마저도 흔들린다.
가파른 길을 15분여 오르면 주능선이다. 왼쪽은 송등산, 괴음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오른쪽은 원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5분쯤 걸었을까. 기암괴석과 어울린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시원한 해풍에 땀을 훔치며 호구산 정상 주변의 바위병풍을 잠시 바라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옛 성곽 터와 다정저수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무수한 리본들이 나뭇가지에서 흔들린다.
길은 다시 두 개로 나눠진다. 어느 쪽으로 가든 정상으로 연결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은 정상을 북쪽에서 공략하는 코스다. 급경사의 바위 길과 아슬아슬한 전망과 스릴을 맛볼 수 있는 길이다. 바윗돌과 나뭇가지를 잡고 5분여간 힘들게 오르니 정상이다.
◆응봉산, 설흘산, 금산 등 남해 명산 한눈에
정상에는 봉수대가 들어섰다. 사방이 확 트여 일망무제 조망이 펼쳐진다. 북쪽에는 망운산과 남해읍이, 동쪽으로는 창선도와 사천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남쪽으로는 금산이 뚜렷하고 남쪽으로는 앵강만과 설흘산, 응봉산이 조망된다. 서쪽으로는 송등산과 괴음산 속으로 핑크빛 진달래 군락이 희미하다. 호구산의 높이에 대해선 지도와 자료마다 다르다. 정상 표지석에는 ‘납(猿)산 626.7m’라고 새겨져 있고, 남해군청 문화관광 보물섬지도에는 617m, 다른 지도첩에는 619m로 표기돼 있다. 이곳 봉수대의 역할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동쪽으로는 금산 봉수대, 남쪽으로는 설흘산 봉수대, 서쪽으로는 본현(현 이동면에 위치)과 통한다’고 적고 있다.
정상에서 중식 후 하산 길을 잡는다. 봉수대 남쪽에 위치한 표지석 앞쪽 바위를 내려선다. 정상과 염불암, 석평을 가리키는 안부 이정표에서 석평 쪽으로 따른다. 가파르던 길은 곧 평탄해진다. 여기서부터 꿈결 같은 등산로가 연결된다. 아름다운 곡선의 등산로가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다.
헬기장을 지나면 바위지대다. 이 산의 하이라이트인 돗틀바위 부근이다. 돗틀바위는 기암괴석의 거대한 군락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어느 바위를 특정하고 있지는 않다. 돗틀바위 주변에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성벽의 흔적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다. 핑크빛 진달래 물결과 조화를 이뤄 황홀하기 그지없다.
◆앵강만 은빛 물결```꿈처럼 아늑한 노도
등산로를 벗어나 한 바위에 오른다. 치마폭처럼 펼쳐진 앵강만에 햇빛이 반사되어 은빛처럼 쏟아진다. 앵강만은 꾀꼬리 앵(鶯) 자와 강(江) 자를 써 ‘새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강과 같다’는 뜻을 가진 바다다. 옆에는 서포 김만중이 유배 중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집필하고 생을 마감했던 노도가 떠있다.
아기자기한 내림 길을 20분쯤 내려선다. 편백나무 숲이 나타나고 곧이어 임도이다. 능선을 직등하거나 왼쪽의 임도를 따르면 길은 앵강고개로 이어진다. 일행은 오른쪽 임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도에서 바라보는 돗틀바위 주변은 거대한 철옹성의 성곽 같다.
용문사 주차장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산책길. 중간지점인 공동묘지에는 할미꽃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곧 돌장승이 보이고 왼쪽 작은 길로 빠져나오면 바로 출발지점인 주차장이다. 용문사를 들머리와 날머리로 잡아 등산을 나서면 총 등산거리는 약 8㎞에 3시간 정도. 여유 있게 등산하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좀 더 긴 거리의 산행을 원한다면 앵강고개를 시작으로 돗틀바위-호구산-송등산-괴음산-평현고개를 잇는 5시간 이상의 코스도 만들 수도 있다.
호구산은 북쪽과 남쪽으로 각각 망운산과 금산을 마주보고 있다. 두 산의 유명세에 가려 지금까지는 덜 알려졌지만 곧 빼어난 아름다움과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무기로 두 산을 추월할 지도 모른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은 산이지만 진달래가 만개하는 4월이 최적기가 아닐까 싶다.
황사다, 방사능이다 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악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눈을 조금만 교외로 돌리면 이런 환경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다도해 풍광에 산벚꽃으로 천상화원을 펼쳐 놓는 호구산도 그 중 하나다.
◆교통=구마고속도로를 타다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하동IC에서 내린다.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을 지나면 호구산군립공원 이정표가 나온다.
◆먹을거리=지나가는 여정에 들르는 삼천포회시장에서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지홍석 san3277@hanmail.net (수필가`산정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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