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거제도 포록`동망산
거제도는 면적 378.795㎢, 해안선 길이 386.6㎞로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 제주도 다음으로 크다. 섬 산행의 명소답게 섬 자락 곳곳에 명산들을 숨기고 있다. 최고봉인 가라산(585m)을 비롯해 계룡산, 노자산(565m), 옥녀봉(554.7m), 선자산(507m), 앵산(507m), 산방산(507m), 북병산(465m), 국사봉(465m), 대금산(437m)이 ‘거제 1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이름 없던 산 두 곳이 슬그머니 반란을 꿈꾸고 있으니 바로 포록산(抱鹿山`280.7m)과 동망산(東望山`287m)이다.
◆2년 전부터 산꾼들 사이에 입소문, 명산으로 급부상=거제도의 산에 대해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정통한 산꾼조차도 낯설게 느껴지는 산 이름. 그러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 뿐, 10만분의 1 지도에도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산이다. 이 산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거제시 동부면사무소에서 2009년 희망근로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등산로 정비를 마무리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산행로가 개설돼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이 산을 가려면 두 가지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섬 산행에 있어서 산의 높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과, 작고 낮은 산이라 조망이 약하고 수목들도 볼품없을 것이다’ 라는 단정 말이다. 산행의 시작점은 동부면사무소가 있는 산양리다. 해금강과 저구항 가는 길목인 오망천교를 건너자마자 우측에 산양약수터가 보이는 삼거리다. 도로의 반대편 서쪽에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고 그 우측에 등산안내도가 보인다. 안내도 뒤쪽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오솔길이 정갈하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면서 주변의 경치가 속살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우선 기존의 섬 산에 대한 이미지부터 달라진다. 나무의 둥치가 30~40㎝, 높이가 20여m에 육박하는 소나무들이 산자락에 지천이다. 빼곡하게 도열한 소나무들. 숲길에는 솔 향이 진동한다. 해발 200여m에 불과한 산이라고는 잘 믿기지 않는다.
아늑한 소나무터널 길을 10여 분 오르면 주능선에 진입한다. 봉우리 하나를 넘자 길은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10분여 내려서면 ‘윗재’인 안부에 도착한다. 직진하면 포록산으로 향하는 길이고 우측은 오송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후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잘 표시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정상에 서면 남해 다도해`바다 조망 한눈에=등산을 시작한 지 약 1시간여 만에 ‘사슴을 끌어안고 있는 산’이란 뜻의 포록산 정상에 도착한다. 동그랗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매우 인상 깊다. 산의 높이에 알맞은 정상석이라고나 할까. 서쪽으로는 지척의 산달도와 한산도 등 바다의 조망이 일품이고 북쪽으로는 산방산 정상부의 바위와 어우러진 산등성이가 파도처럼 꿈틀댄다. 산의 높이와 조망은 비례한다는 정설이 깨지는 순간이다.
포록산에서 동망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푹신푹신한 융단길이다. 하루종일 걸어도 관절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거진 숲속에서 간간이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산중의 울림’은 조상의 묘를 깎는 예초기 소리가 분명하다. 아무리 융단길이라고는 하나, 여러 개의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 보니 은근히 힘이 든다.
등산을 시작한 지 2시간여 만에 전방이 탁 트인 동망산에 올랐다. 포록산보다 6m가 더 높지만 정상석이 없다. 숨을 돌리고 중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망부터 살핀다. 남쪽으로는 율포만 바다와 탑포리 선착장이 보인다. 그 우측에는 추봉도가 보이고 서남향으로는 앞으로 올라야 할 봉우리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여유 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하산 길을 나선다. 진행방향은 ‘KT 2.0㎞’로 표시된 우측 내리막길. 서쪽 방향으로 떨어지던 등산로는 다시 방향을 잡아 좌측으로 꺾어지며 남쪽으로 향한다. 능선 길이 조금 거칠다. 지금까지 걸었던 융단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바위 길이 연결되고 있다.
동망산을 출발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바위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바위길이라 바위를 오르기로 한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최고의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바다`섬`산,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바다와 섬과 산의 환상적인 조합. 일행은 말을 잊는다. 비경 앞에 우뚝 섰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남쪽 발아래 푸른 바다가 보이고 그 뒤쪽 너머로 거제에서 가장 높은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왼쪽 노자산에서 마늘바위와 뫼바위, 가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하다. 우측의 맨 끝에는 남해바다의 전망대이자 천하제일명산이라는 망산이 우뚝하다.
전망대를 통과해서 두 개의 봉우리를 더 오른다. 255m봉과 봉수대 터가 있는 289m봉인 또 하나의 동망산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조금은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내려서니 육각정 정자와 벤치가 나온다. 육각정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원한 해풍이 불어와 이마에 흐른 땀을 말려준다. 발아래 우뚝 선 KT수련관은 최고급호텔을 연상케 한다. 수련관 앞쪽을 지나 입구인 1018번 지방도로로 내려서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산양리 오망천교를 출발해 날머리인 KT수련관까지, 등산거리는 약 7.4㎞에 소요시간은 식사시간 포함해 약 4시간 정도다. 산은 다녀와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낮지만 솔 숲이 우거져 삼림욕을 원없이 즐길 수 있는 산이 포록산과 동망산이다. 조망이 빼어나고 오염되지 않아서 마치 산책을 하듯 편안하고 부드럽게 걸을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거제도의 서쪽 해안에 치우쳐 있어 서부 해안과 남해군 쪽의 비경을 탐승하기에 최고의 코스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 와도 좋을 것이다.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거제 해금강이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문학과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청마 유치환 생가와 문학관, 산방산 비원과 식물원을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