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지리산 영제봉`솔봉
지리산 국립공원 서부지역 만복대에서 서쪽으로 0.7㎞쯤 내려간 1,360m 암봉에서 가지를 쳐 나간 굵고 긴 능선이 있다. 이름하여 견두지맥이다. 견두지맥은 전남북의 경계를 달리며 다름재, 밤재터널을 거쳐 견두산을 솟구쳐 놓고, 천마산, 깃대봉, 형제봉, 천왕산으로 뻗어가다 구례 섬진강 앞에서 끝을 맺는다. 견두지맥상의 봉우리는 대개 600m급의 낮은 산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산이 낮다고 등산로가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융단 같은 등산로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숲속 길의 청량함, 견두지맥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산객이라면 누구라도 그 매력에 반할 수밖에 없다. 숲의 상쾌한 기운에 머리가 맑아지고 온갖 근심이 저절로 사라진다. 견두지맥의 최고봉이 바로 영제봉이다.
◆밤재-영제봉-지리산온천 30리 코스= 밤재터널을 지나면 우측에 견두산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보인다. 바로 옆 임도는 밤재 정상까지 이어진다. 소형차 운행은 가능하나 버스 진입은 어렵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중간지점에 좌측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굳이 밤재를 기점으로 삼지 않는다면 지름길도 있다. 임도가 동쪽 방향으로 깊숙하게 회전하는 지점에 작은 등산로가 또 보이는데 이곳에서 오르면 된다. 밤재정상을 거치는 것보다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단축된다.
일단 주능선에 올라서면 등산로가 뚜렷하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리본도 더러 걸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능선 길을 이어 가다가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니 ‘숙성치’다. 숲이 우거진 주능선이라 조망은 그리 탁월하지 못하나 이따금씩 조망을 열어줘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산행 중 뒤돌아보면 견두산과 천왕산이 선명하고 그 뒤로 이름 없는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수락폭포가 있는 수락재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 갈림길을 만나 조금 오르니 솔봉(800m)이다. 산정에는 삼각점만 있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영제봉산행기를 읽어보면 솔봉이 어딘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는 글을 접한다. 하지만 그들은 솔봉을 오른 게 아니라 오름길에서 우측 우회 길을 선택해 아예 오르지 않은 것이다.
솔봉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르다 보면 방치된 무덤 1기가 나타난다. 국립지리원 지도에 영재봉으로 표기한 877.9m 봉이다.
이후 0.5㎞ 구간은 남북 양쪽 사면이 가파른 능선으로 이뤄진 진달래 능선이다. 암릉길로 이뤄진 881m 봉에는 전망바위도 있고 조망이 탁월하다. 북쪽으로 주천면과 남쪽의 산동면은 물론 지리산 서부지역의 주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은 다시 안부로 뚝 떨어진다. 영제봉 오름길로 접어들자 지금껏 눈에 띄지 않던 산죽이 펼쳐진다.
◆만복대`성삼재`노고단`바래봉이 한눈에=급경사 오름길을 한참이나 올랐을까. 드디어 영제봉이다. 평평한 정상 주변에는 정상석이 있고 사면이 탁 트여 전망이 그만이다. 동쪽으로 지리산 만복대가 펼쳐지고, 그 우측으로 고리봉, 성삼재, 차일봉, 노고단이 산너울을 그렸다. 만복대 좌측으로는 세걸산과 바래봉이 선명하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솔봉을 비롯해 견두산과 천마산도 뚜렷하다. 그 뒤로 무등산 줄기가 장막을 쳤다. 북쪽에서는 백두대간의 고남산, 남원의 풍악산과 문덕봉이 연무 속에서 조망을 보탠다.
영제봉 이후는 하산 길이다. 큰 오름의 봉우리가 없어 능선 길이 대체로 완만하다. 15분이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살짝 좌측으로 휘어지는 등산로는 다름재를 지나 지리산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으로 확 꺾어지는 등산로가 우리가 진행해 가야 할 길이다.
잠시 후 두 번째 갈림길과 만난다. 좌측으로 떨어지는 등산로가 산동저수지가 있는 월계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로 첫 번째 탈출로다. 산수유마을로 유명한 상위마을과 연결된다.
무덤 2기를 통과하면 또 한 번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수락폭포가 있는 수기리다. 눈앞에 융단 같은 숲길이 펼쳐진다. 소나무 숲과 환상조합을 이룬다. 청량한 기운이 감돌아 삼림욕에 그만이다. 그 흔한 계단 하나 없다. 어느 산,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만한 등산로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밤재에서 영제봉까지 오름길이 30점이었다면 내림길은 70점이라면 설명이 될는지.
소나무 숲길 끝에 대나무 숲이 나오더니 이윽고 갈림길 지점에 샘이 하나 나타난다. 음양샘이다. 통일신라의 고승이자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지리산 지형공부를 하다가 청룡고지 산 능선에서 발견한 샘이다. 주변 산세가 음양의 이치를 잘 나타낸다 하여 음양샘이라 불리는데, 사계절 같은 양의 샘물이 흐르고 정기가 충만해 음양의 조화를 잘 나타낸다고 한다. 이 샘물을 먹는 연인들은 사랑을 이루고 부부는 백년해로 한다는 안내문이 보이지만 봄이라 그런지 샘물 속에는 지렁이가 꿈틀거려 선뜻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산수유 마을엔 노란 물감 흩어 놓은 듯= 하산 지점인 산자락 입구와 들녘에는 노란 산수유가 지천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군락지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해 유난했던 추위 때문에 4월이 되어서야 제철을 맞았다. 지리산용궁가족온천탕까지 이어지는 길 주변에도 꽃들이 만개했다. 용궁가족온천탕이라고 쓰인 커다란 건물을 보고 진행하니 드디어 주차장이다.
밤재에서 등산을 시작, 지리산용궁가족온천탕까지 이어지는 총 등산거리는 약 12.4㎞ 정도. 휴식시간과 중식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을 상회하고 순수 걷는 시간만 4시간 30분 정도다. 등산의 시작점은 크게 두 군데로 남원과 구례의 경계인 밤재와 구례 산동면의 수기리다. 밤재는 견두산과 천마산의 등산 기점이기도 하다. 수락폭포가 있는 ‘수기리’에서 원점회귀 등산이 가능하다. 자가용 이용객이나 부담 없는 산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지리산 영제봉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산이다. 아직 소개된 적이 별로 없어서다. 최근 이 봉우리가 지리산 서부 조망대로 급부상하면서 지리산 온천 또는 산수유축제와 연계해 찾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구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도 오후 7시 이전에 귀가할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돌아오는 여정에 보물 제281호로 지정된 남원 광한루에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정원이 주변 경치와 잘 어우러진다. 광한루 주변에 유명한 한정식, 추어탕집이 많아 미식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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