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그 꽃을 처음 본 곳이 포은의 유허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누군가가 운명처럼 심어 놓았는지 모른다. 무리지어 핀다고‘꽃무릇’, 또는 석산(石蒜)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상사화라 부르기도 하지만 꽃무릇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선화과에 속하며 하나의 뿌리에 꽃과 잎이 자라지만 평생을 두고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똑같다. 꽃대가 먼저 올라와 꽃을 피우고 꽃과 꽃대가 사그라진 자리에 잎이 올라와 자라는 게 꽃무릇이라면, 잎이 먼저 올라와 자라고 잎이 진 자리에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는 게 상사화다.
포은의 불꽃같은 생애가 꽃무릇을 불러들였을 수도 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꽃대가 고려였다면 포은은 절정의 꽃이었고, 꽃대와 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새로 돋아난 잎은 조선이 아니었을까. 고려의 국운이 풍전등화 일 때 포은은 정적 이성계 일파의 손에 희생이 되었다. 철퇴를 맞은 포은의 머리에선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고 그대로 꽃무릇으로 승화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꽃의 화피와 꽃술이 여섯 개라 그랬을까, 포은의 나이 66세, 공양왕 4년 4월 4일의 일이었다.
가을의 서곡이 운율을 타며 산하로 스며드는 9월이면 꽃무릇은 지천으로 피어난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 그리고 고창 선운사다. 뙤약볕아래서 쑥쑥 자라는 연두색의 꽃대에 붉은 열기가 차오르고, 일시에 하늘을 향해 선홍빛 핏빛으로 확 터트리면 그대로 꽃이 되어 장관을 이룬다.
오늘도 그 꽃을 확인하러 영광 불갑사로 들었다. 산자락에 들기 전부터 일렁이는 꽃들은 물결이 되고 일주문에서부터 정점으로 치닫는다. 차량으로 네 시간, 장거리 여행의 여독도 일시에 확 달아간다.
그런데 불갑산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무슨 이유일까, ‘슬픈 기억’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 때문일까. 예전에 이곳 일대는 대규모의 빨치산 집결지, 그 수가 삼만 여명에 달했다. 해방이후 나라는 거대한 이념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소수의 특권층에 다수의 빈민층이 학대받는다는 생각이 팽배해 상실감에 젖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빨치산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밤과 낮을 시달려야 했다. 밤이면 빨치산의 세상이 되었고 낮이면 경찰과 국군의 세상이 되었다. 밤에는 지서에 공조했다는 이유로, 낮이면 빨치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총살이 자행되었다.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최고의 꽃무릇 군락지는 동백골. 동백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골짜기지만 해불암과 구수재 갈림길 까지는 평탄 한 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지는 불갑사의 정운스님이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곳 공주가 이별하면서 준 나무 열매가 자란 곳이다. 꽃과 나무, 사람들이 모두 다 못 다 이룬 사랑 이야기를 품어서일까. 고즈넉한 분위기에서서 피어나는 꽃무릇들이 애달프고 구슬프다.
영광과 함평의 경계 구수재에 오른다. 여기서부터 마지막 힘을 보태야만 모악산의 정상 용출봉이다. 꽃의 군무에 잠시 주춤했던 땀이 온몸으로 흐르고, 산정에 불어오는 산바람이 땀을 훔쳐낸다. 나무계단 길을 삼백여 미터 내려서니 한우재, 영산기맥의 마루금을 버리고 늘어진 밧줄의 부축을 받으며 왼쪽의 작은 능선으로 내려선다.
정자를 만나는 곳에서 왼쪽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어두침침한 산속에서 한국의 100경에 빛나는, 40여만 평에 달하는 용천사 꽃무릇의 백미를 만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알 수 없는 숙연한 분위기가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고야 만다. 한국전쟁 이듬해 1월, 이곳에선 대규모의 빨치산 토벌 작전이 벌어졌다. 총알이 빗발치고 선홍빛 핏방울들이 파란 하늘에 피어올랐다. 시신이 쌓이고 계곡 아래로 피가 흘러 내렸다. 죽은 사람만 일천여 명, 그 중엔 수많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초근목피로 목숨마저 연명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좌익과 우익이 무슨 소용일까. 배불리 먹고자 한 것이 죄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급격한 한기에 온몸이 몸서리쳐지자, 비로소 발에 밟힐 듯 꽃은 지천으로 피어났지만 향기가 없음을 알게 된다.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이 무언의 항의로 적의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비마저 내려서인지 꽃술에 이슬처럼 맺힌 빗방울들이 마치 피눈물처럼 보여 처연하기만 하다.
그날로부터 적지 않는 세월이 흘렀다. 누가 어떤 의도로 꽃무릇을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잡한 모형소총이 걸리고 총알의 흔적이 새겨진 총알바위가 그날의 참상을 애써 재현하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했다던 용천사도 6.25때 불타버렸고, 의연한 석등만이 아직까지 남아 그날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용천사를 내려오니 축제가 열리고 있다. 떠들썩한 음악소리에 노래와 춤이 이어진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기주의는 이곳에서도 존재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치러야 할 축제마저도 편 가르기를 하는 사찰과 행정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꽃을 가지고서도 한쪽에서는 상사화 축제를, 다른 한쪽에선 꽃무릇 축제를 연다.
꽃무릇을 볼 때마다 떠 올리는 붉은 선혈이다. 수많은 죽음이 연상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저승에 피는 꽃’, 또는 ‘귀신을 부르는 꽃’이라고 부르는가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다시 피는 꽃’,‘부활화’로 예찬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고 달라진다는 걸 우리들에게 몸소 가르치고 일깨우는 게 아닐까.
하나의 뿌리에 꽃과 잎이 양분되어 일생을 두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꽃의 운명이며 안배가 아닐까. 따로 나고 자라서 꽃과 잎을 피운다는 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려는 꽃의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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