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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 2014년 마지막 단풍일까? [2014. 11. 15]

스토리1

by 산정(지홍석) 2014. 11. 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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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구층암 가는 길의 오솔길 입구가 보이죠.

 

구층암 오름길 좌측으로 보이는 단풍길!

 

들어갈때는 걸어 두었던 문이 내려올대는 열렸네요.(아래, 위 사진)

  

 

오솔길 막혔을때, 우측을 따르면 임도를 통해서도 구층암을 오를수 있습니다.

 

 

 

구층암 본당, 채 복원되지 못한 삼층석탑이 그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허접하게 복원되어서인지 구층암이 더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네요.

 

 

몇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라고 생긴 모습 그대로,  모과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합니다.

 

 

구층암 천불전 앞에서 바라본 구층암자와 지리산 산자락을 조용히  응시해 봅니다.

 

빨갛게 익은 감이 가을의 끝자락임을 실감케 한다.

 

천불전 앞의 모과나무, 수령이 몇백년을 넘었다지만 정확히 몇년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구층암 뒷쪽으로도 암자가 하나 있습니다.

 

화엄사 매화 앞에서  탐방객들이 안내판을 읽고 있습니다.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구층암 우측의 시누대 길

 

 

 

구층암 암자에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구층암에서, 또는 화엄사에서 오르내리는 시누대 길은 운치가 아주 빼어납니다. 

 

 

 

 

 

 

화엄사와 구층암을 연결하는 길

 

 

 

 

 

 

 

때이른 동백꽃과 단풍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화엄사 구층암(九層庵)

 

화엄사의 산내 부속암자로 대웅전 뒤편 언덕길 약 5분 거리에 있다.

가는 길은 좁고 가팔라 마치 속세와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조릿대 무성한 돌계단을 밟고 암자에 올라서면 생각보다 넓은 마당이 시원하게 보인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은 천불보전 오른편 요사채에 걸린 ´구층암´ 편액과

파괴된 석탑부재를 불완전하게 복원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삼층 석탑은

두 단의 기단 위에 판석을 얹고 몸돌을 올렸다.

이 탑은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1961년 9월 복원했다고 한다.

 

암자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혹자는 화엄사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 했던 절로 화엄사의 모태가 된 절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름으로 보아 본래 구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여길 뿐이다.

 

천불보전 앞 절의 중심 마당으로 들어 가면 탑이 있어야할 자리 앞에 뎅그러니 석등 하나가 놓여있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천불보전을 중심으로 좌, 우 두 채의 요사는 전형적인 절집구조를 보여준다.

대개 대웅전 앞의 좌 우 두 채의 요사는 적묵당(寂默堂)과 심검당(尋劒堂)으로 이름 붙여진 경우가 많으나 이곳에는 이름이 없다.

 

이 요사채들은 임란 때 불에 탄 이후 광무 원년(1897년)과 3년 (1899년)간의 중건기가

왼편 요사의 처마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00여 년을 넘긴 건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린 요사를 새로 지을 때

암자 마당에 자라던 모과나무가 온몸을 보시하여 요사의 기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 한다.

마당 왼쪽에 자라던 한 그루의 모과나무는 왼편 요사의 가운데 기둥이 되었고,

마당 오른편에 자라던 두 그루의 모과나무는 같은 쪽 요사의 두 기둥이 된 것이다.

 

둘레가 160cm 정도에 수령 200여 년의 모과나무들이 몸뚱이 잘리어 기둥으로 섰지만,

그 세월이 살아서 200년 죽어서 100년 합해서 300년을 넘었다.

다듬지 않고 생긴 모양 그대로 기둥으로 세운 모과나무가 창방과 마루턱과 만나는 부분에는 모과나무를 건 드리지 않고

마루나 지붕구조물에 홈을 파서 모과나무의 모양에 맞도록 아귀를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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