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다. 조금은 답답하고 무기력해지는 계절, 울산(鬱散:답답한 기분을 떨쳐 없애 버린다는 뜻)할 장소를 찾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 장소 또한 울산(蔚山)이었다. 동쪽의 방어진 해안에 명소 대왕암 공원이 있다. 1984년에 공원으로 지정됐는데 예부터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목장으로 쓰였고 그 넓이는 약 93만㎡이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비껴서 애국혼을 일깨우는 전설이 전해 온다. 용추암이라 불리는 대왕암은 신라시대 문무대왕비(妃)가 ‘죽어서도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있다. 댕바위가 있는 산이라 하여 댕바위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선정
가벼운 운동과 산책, 바다의 절경을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최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책자에 소개되면서 이제는 전국구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평일이나 주말에는 평상복 차림의 관광객 대신 배낭을 짊어진 해안 트레킹족들이 많이 몰려든다.
해안 트레킹 기점은 일산해수욕장이다. 백사장 좌측 끝 지점에는 대형 수산물센터가 준공을 기다리고 있고, 오른쪽 남쪽의 백사장 끝 지점에는 대왕암 공원의 일부인 바깥 막구지기와 햇개비가 보인다. 검푸른 바다를 좌측으로 감아돌며 산책하듯 하얀 백사장을 걷는다. 백사장 끝머리에 도착하면 대왕암 공원을 오르는 대왕암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제일 위, 주변 안내도 앞에서 계단을 버리고 좌측 흙길로 접어든다. 수령이 100년이 넘은 소나무 숲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소나무들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해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인공적으로 심은 1만5천여 그루의 해송과 곰솔군락이다. 해송의 진한 향기와 바다의 운치까지 겹쳐져 해안 경관이 더욱 돋보인다.
#기암바위 위 부부송`대왕비암 등 장관
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다. 수루방(首樓坊) 위에서 북쪽 해안을 조망하고 해안으로 내려선다. 북쪽 끝 천길 해벽단애 밑에 형성된 용굴(덩덕구디)을 시작으로 기기묘묘한 기암이 줄지어 나타난다. 여기부터 본격적인 기암 트레킹이 시작된다.
기암바위 위의 부부송을 비롯해 넙디기, 할미바위(남근암), 탕건암 등이 차례로 도열한다. 특히 부부송은 거친 해풍에 맞서 싸우며 바위에 뿌리를 내려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두 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부부처럼 의지하며 금실 좋게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여 부부송이란 이름을 얻었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나무에 사랑을 약속하면 평생 해로한다고 전한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기암과 탁 트인 해안 조망은 북동해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고이’에 최근 전망대를 설치해 전하만 미포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망망대해에 점점이 떠있는 거대한 선박들이며 크고 작은 5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사근방’이 잠시라도 눈을 못 떼게 만든다. 마치 선사시대의 공룡 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뭉쳐져 있다.
해맞이 전망대가 있는 광장에 선다. 좌우측 해안에는 멍게와 해삼 등을 파는 좌판을 벌인 해녀들의 호객소리가 요란하고, 그 너머로 문무대왕의 뜻을 따라 왕비 자신도 호국룡이 되었다는 ‘대왕비암’(大王妃岩)이 파도 속에 모습을 나타낸다.
대왕암으로 가는 바다 위에는 철다리가 놓여 있다. 대왕암의 불그스레한 바위색은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그 상서로운 기운을 따라 하늘로 솟구치는 용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왕비를 추모하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정상부 바위 철구조물에 사람들이 올라서면 대왕암엔 형형색의 아름다운 왕관이 연출된다. 인간의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물이 왕비의 영혼을 위로하는 왕관으로 탈바꿈되니 바위를 밟고 오르내리는 우리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슬도 등대 주변 색다른 볼거리 많아
1906년 3월에 세워진 울기 등대가 눈앞에 보인다. 백색 8각 철근콘크리트(높이 24m)로 동해안 최초의 등대다. 울기등대 옆으로 해안산책로 표지판이 보인다. 호젓한 분위기에 잠겨 걸음을 옮기노라면 곳곳에 기가 막힌 전망대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몽돌밭 옆으로 산책로가 연결되기도 한다. 해안산책로 끝에 자리 잡은 슬도는 원래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방파제가 연결돼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슬도 등대 주변은 색다른 볼거리들이 널려있다. 여유 있게 꼭 한번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당 넓이만큼의 거대한 암반이 펼쳐져 있고,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마치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해무(海霧)가 바다에 드리워지면 저 멀리 닻을 내린 거대한 선박들이 바다와 조화를 이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등대에 오르면 방어진항을 드나드는 선박들과 항구의 원경(遠景)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파제 옆 안쪽에는 항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해녀들의 모습도 가끔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의 살아 있는 생동감을 맛보고 싶다면 방어진항 주변의 회시장을 한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차시설이 부족해 다시 되돌아오는 번거로움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은 슬도 주차장 주변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전체 트레킹에 소요되는 시간은 코스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3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작성 2010. 6. 24]
글`사진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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