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고 할 정도로 충북 진천은 산수와 인심이 후덕해 살기에 좋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 가면 ‘대자연의 만물이 내는 온갖 소리’라는 멋진 이름의 만뢰산(萬賴山)이 있다. 만뢰산이라는 이름은 고구려 시대의 지명을 본떠 그대로 붙인 이름으로 추측되며 옛날에는 금물노산, 만리산, 만노산, 이흘산이라고도 불렸다. 정상 높이는 611m이고 정상에는 말라버린 우물터가 있어 신라의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태실 등 김유신 장군 유적 널려 있어
만뢰산은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시대 김서현 장군이 만노군(신라 때 진천군의 이름)의 태수로 부임 했을 때 돌로 성을 쌓았다는 산성 흔적이 남아 있고, 동쪽 산줄기를 이어간 태령산 산정에는 삼국통일 대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어둔 태실이 1천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잘 보존되고 있다. 남동쪽 자락인 문봉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이 자라고 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만뢰산의 등산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만뢰산 정상만 다녀오는 원점회귀형 코스와 갈미봉과 태령산을 독립적으로 다녀오는 코스. 그러나 별로 권할 만한 코스는 아니다. 코스가 짧다는 단점도 있지만, 만뢰산 등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보탑사를 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종주코스다.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만뢰산과 갈미봉, 태령산을 한꺼번에 탈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총 등산 거리는 8.5㎞. 여유 있게 돌아봐도 4시간이면 충분하고 만뢰산 정상을 지나 언제든 페이스에 따라 군데군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 김유신 생가터를 기점으로 잡고 태령산을 지나 보탑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하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보탑사를 등산기점으로 잡고 국궁장을 거쳐 김유신 유허비로 내려오는 역코스를 권한다.
3시간여를 달려 버스는 연곡리 삼거리에 도착했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이 더 이상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도로 폭은 자가용 차량이 경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거진천’ 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과 관광버스를 배려하여 이른 아침부터 진천읍 ‘모범운전자회’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무전기로 교신을 하고 자신들의 차량으로 버스를 에스코트해 보탑사 입구까지 데려다 준다. 전국의 명산을 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처럼 친절하게 차량을 안내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듯싶다
#황룡사탑 재현한 보탑사 삼층목탑
계단을 올라 사천왕상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경내에 들어선다. 오늘날의 보탑사를 있게 한 거대한 삼층목탑이 일행을 반긴다. 겉모습은 탑이지만 각층마다 법당이 들어선 다층 구조로 되어 있다. 황룡사 9층 목탑 이래 1천300년 만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게 지어진 목탑이라고 한다. 각 층은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데 신라가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웠듯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은 것이다.
황룡사탑 재현을 위해 목수 신영훈 선생은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썼고, 단 한 개의 쇠못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삼층목탑의 높이는 42.71m,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다.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 사찰 건물 주변에 각종 야생화와 수련을 심어 꽃 박람회장을 무색하게 한다. 절의 좌측편 구석진 자리에 보물 제404호 연곡리 석비가 있다. 비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아 백비(白碑)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3.6m, 고려 초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산의 반열에 오를 만한 매력 곳곳에
등산로는 백비 우측으로 해서 능선으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설치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등산로 주변은 우거진 나무가 햇빛을 차단해 삼림욕에 그만이다. 부드러운 산길과 순한 주능선, 그리고 맑은 공기는 만뢰산 등산의 백미다. 보탑사에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되며 정상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갈미봉과 태령산은 정상 표지석이 없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태령산을 지나 하산로가 있는 삼거리 쉼터에서 주능선으로 200m 정도 더 진행해야 김유신 장군의 태실과 만난다.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는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으로 쌓고 주위에 돌담을 쌓아 신령스런 구역임을 나타냈다.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봉분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고대 신라의 산성 축조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에 2006년 태반과 탯줄을 먹는다는 황동 호랑이가 묻힌 사건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다행히 태실봉분이나 기단석 및 주변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고 기단 사이에 끼워져 있던 황동 호랑이도 바로 제거되었다. 만뢰산은 주변이 온통 김유신 장군과 연관돼 있다. 하산지점인 담안밭에는 김유신의 유허비와 생가터가 있고 주변에는 ‘화랑무예태권성지’도 조성돼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인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등산 중 영지버섯을 채취하는 행운도 잡을 수 있다. 지금은 무명산이지만 곧 명산의 반열에 오르리라고 확신한다. 온 가족이 가볍게 등산을 즐길 수 있고, 사찰 건축물과 야생화를 곁들인 역사탐방 코스로는 이보다 더 좋은 산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사진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 san32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