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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군도 신시도 월영봉[기사: 2013. 7. 25]

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by 산정(지홍석) 2013. 8. 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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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랑 산사람] 고군산군도 신시도, 월영봉·대각산

 

 

 

 

 

 

 

 

 

 
 # '호수에 뜬 별' 63개 섬들 손에 닿을 듯
 # 선유8경 월영봉 유람 한여름 신선놀음  

서해바다의 고군산군도는 예전의 군산이라는 뜻이다. 신시도·야미도·선유도·무녀도·장자도·대장도·곶리도·횡경도·방축도·말도 등 63개의 섬들이 별처럼 모여 있어 ‘호수에 뜬 별들’이라 불린다. 고려시대엔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이었고 서남해 지방에서는 개경이나 한강으로 가는 중간지점으로 조운선이 풍랑을 피해 정박하는 중간 기착지였다. 왜구들의 노략질로 고려 말에는 폐허가 되었고 조선 태조 6년(1387)에 군사전략적 요충지인 군산도(현재의 선유도)에 수군 만호영이 설치되었다.

신시도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섬으로 군산시청 남서쪽 약 26㎞ 지점에 있다. 고군산군도의 섬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섬으로 신라 때는 문창현(文昌縣)의 심리(深里)·신치(新峙)라 불렀으며 일제 때에 신시도라 불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조개 무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왔을 것으로 추측되고 신라초기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해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섬을 남북으로 양분하는 두 봉우리가 있으니 바로 북서쪽의 대각산(187m)과 남동쪽의 월영봉(198m)이다.

산행의 시작점은 신시도 휴게소 주차장. 들머리이자 날머리다. 주차장 뒤쪽에서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철책계단을 오르고 신시도 최고봉인 199m봉까지 올랐다가 월영재로 내려 선 다음 월영봉으로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도로 월영재로 바로 오른다. 고개에는 사각형 정자 쉼터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까지 있다.

고개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야 월영봉이다. 월영재에서 월영봉까지의 거리는 불과 260m이지만 제법 경사가 있어 10분 이상이 걸린다. 새로운 것(新)을 받든다(侍)는 신시도의 의미가 구한말 유학의 대학자 간제 전우 선생이 한동안 이 일대에 머물며 흥학계를 조직, 한학을 가르치게 만들었다. 또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올라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쳐 거처를 만들어 놓고 때로는 생식을 하며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 남경까지 들렸다고 한다.

선유8경의 하나인 월영봉은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막힘없이 펼쳐지는 서해바다의 조망에 잠시 취하면 점점이 흩뿌려지는 고군산군도(群島)의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새만금의 방파제가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북쪽으론 훤칠한 대각산이 우뚝하고 그 뒤 좌측 너머로 무녀도와 선유도가 조망된다.

20분이면 낮은 평지에 내려서고 새만금 방파제에서 신시도마을로 향하는 도로공사지점을 횡단해 몽돌 미니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마리나 항이 들어설 예정지라 해수욕장의 수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해변 끄트머리 좌측에 대각산 오름길이 보이고 자연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절리현상의 바위들이 서해바다의 조망과 어울려 대각산의 등산로를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대각산 줄기는 용의 형국으로 아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이곳 주변에 임씨 성을 가진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을 펴지 못하고 양손 모두가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장성해 시집 갈 나이가 되어 정혼을 하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죽었고 지관이 산줄기의 용머리 옆에 묘 자리를 정하고 인부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뿌연 흰 구름 같은 기운이 돌더니 하얀 학 한마리가 깃을 펄럭이며 날다가 떨어져 죽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처녀마저 죽고 만다. 그 순간  처녀의 손가락이 펴졌고, 손바닥에는 ‘王’자가 선명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시집갈 때 쓰려던 큰 돼지 8마리가 다음날 모두 죽어 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임씨 딸이 여왕이나 왕비가 될 팔자였다 여기고 처녀와 아버지를 학이 나온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그 당시 죽은 처녀가 수백 년이 지나자 할머니가 되는 바람에 임씨 할머니라 부른다는 것이다.

대각산에는 정상석과 3층으로 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신선들이 살았다는 선유도와 무녀도의 풍경들이 지척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원 없는 조망을 만끽하며 하산 길을 선택한다. 좌측 능선은 신시도 마을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요, 직진하면 122m봉을 지나 임도로 떨어진 다음 왼쪽으로 꺾어서 나오면 신시도 마을 입구와 연결이 된다.

좌측 능선으로 9분여 내려서면 벤치3개가 있는 마지막 봉으로 조망이 기가 막힌다. 여기에서 완만하게 8분을 내려가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 삼거리다. 우측으로 가면 신시도마을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저수지로 향하는 길이다. 저수지를 만나 들녘을 걸으면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고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드디어 월영재다. 발아래 보이는 주차장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월영봉과 대각산을 연계하고 등산과 걷기를 병행해 주차장까지 원점회귀 하는 데 11㎞ 정도 내외다. 앞산(122m)과 신시도의 최고봉 199m봉을 들른다 해도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이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해발이 높지 않아 개념도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필자가 처음 신시도 월영봉을 찾았을 때는 2007년도였다. 새만금방조대의 뼈대가 비응도에서 신시도까지 연결되었을 때였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했고 대형버스가 겨우 비포장길로 신시도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보았던 고군산열도의 비경과 환희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2010년 19년 동안의 간척사업을 통해 전북 군산에서 부안까지 바다위에 새만금 방조대가 완공되면서 섬들이 육지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천문학적인 공사비 6조원과 방조대의 길이가 33.9㎞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지만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가는 신시도를 바라 볼 때면 괜히 가슴 한쪽이 저리어 온다. 얼마 후 무녀도와 선유도를 연계하는 연륙교가 완공되면 섬은 더욱 더 황폐화 될지도 모른다. 들어가고 나오는 길. 군산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비응도 활어선착장에서 한 잔의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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