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강원도 인제군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
# 물가 따라 걷다 길 없으면 등산화 신은 채 계곡으로 첨벙첨벙
강원도 인제군 개인산과 방태산 주변에는 ‘3둔 4가리’가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물`불`바람 세 가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서 난세에 숨어 살 만한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어원으로 보면 ‘둔’은 산속에 숨어 있는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이고 ‘가리’는 겨우 밭을 갈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깊은 골짜기를 뜻한다.
이렇듯 깊은 산 속에 터를 잡은 3둔 4가리로 들어가려면 협곡을 통과하거나 강물을 건너야 한다. 그 3둔은 달둔`살둔`월둔이요, 4가리는 아침가리`곁가리`적가리`연가리를 말한다. 아침가리는 아침에 밭을 갈 정도의 해만 잠깐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깊은 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아침 조(朝), 밭갈 경(耕), 고을 동(洞)을 써서 조경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아침가리골’은 사가리 중에서도 가장 깊고 긴 골짜기다.
아침가리골 트레킹 시작점은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방동약수주차장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방동약수터 주차장 입구까지 진입이 수월했지만 주말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라 방동2교에서 걸을 때도 있다. 방동약수주차장에서 오름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이 방동약수 방향이라면 오른쪽은 포장된 임도로 방동고개까지 이어진다. 나무 그늘로 오르기 위해서는 약수 쪽을 택한다.
방동약수는 ‘한국의 명수’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탄산 성분이 많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철, 망간, 불소가 들어 있어서인지 위장병과 소화 증진에도 크게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위장병 환자들이 오랫동안 요양을 하기 위해 약수 근처에서 민박까지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비탈진 계곡 아래 수령이 300년 이상 된 엄나무 아래 암석에서 솟아난다. 한 사람씩만 샘으로 들어갈 수 있어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맛볼 수 있다.
방동약수에는 전설이 있다. 약 300여 년 전에 한 심마니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자리로 찾아갔더니 ‘육구만달’이란 산삼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60년생의 씨가 달린 산삼을 육구만달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신비의 명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산삼을 캐낸 자리에서 약수가 치솟기 시작했는데, 그 약수가 바로 방동약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약수 효녀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강릉에서 아픈 노모를 위해 약수를 찾아왔던 열일곱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연로한데다가 위장이 소화를 못 시켜 심하게 앓아누운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 눈물 섞인 한숨을 지으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장돌뱅이들을 통해 방동약수의 신비한 효험과 전설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녀는 당장에 길을 떠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소녀를 걱정해 만류했다. 그렇지만 소녀는 간단한 행장을 꾸리고 남장을 한 채 장돌뱅이 대열에 합류해 길을 떠나게 되었고 마침내는 우여곡절 끝에 방동약수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큰 물통에 약수를 가득 담아서 고향 마을에 돌아갔고 어머니에게 며칠간 약수를 마시게 했더니 배앓이가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약수 효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작은 산 하나를 오르는 힘을 소비해야 방동고개에 도착한다. 고갯마루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작은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노약자들은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마을 트럭으로 이곳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걸으면 방동2교에서는 1시간, 방동약수에서는 40분 정도가 걸린다.
방동고개에서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이 시작되는 조경동다리까지는 비포장도로로 45분 정도가 소요된다. 아침가리 약초상이 보이는 조경동 다리 못미처에서 좌측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곡 트레킹에 앞서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먼저 해결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미리 배낭 안에 휴대폰과 지갑 등 귀중품을 챙겨 넣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계곡 트레킹을 나선다. 물가를 따라 걷기도 하고 차가운 물속을 첨벙첨벙 등산화를 신은 채 건너가기도 한다. 거친 물길을 만나면 숲길로 들고 물속을 아예 헤엄치듯 건너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물이든 바위든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잠시 거칠다가도 유순해지고 바위와 어우러진 아침가리골의 비경은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수중보를 만나면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은 거의 끝난다. 수중보를 횡단해 건넌 다음 조금만 더 진행하면 방태천이 나타난다. 진동리로 가기 위해서는 방태천을 건너야 한다. 조경동다리에서 진동리 마을까지 계곡 트레킹만 3시간 정도가 걸린다.
방동2교나 방동약수주차장에서 출발해 방동고개를 넘어 진동리까지 하산하는 데 약 13㎞의 거리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아침가리골에도 뚝밭소`용소 등 명소가 있지만 이정표와 설명이 없고 계곡 전부가 다 아름다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해발 1천여m가 훌쩍 넘는 방태산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아침가리골은 예전엔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정감록’의 예언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고 대를 이어 화전을 일구며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하나 둘 대도시로 떠났고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계곡 트레킹의 제1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아침가리골은 방태산 구룡덕봉 동쪽 사면의 월둔고개 근처에서 발원한다. 조경동 옛 마을을 지나 진동리 갈터마을 앞에서 방태천과 합류하는 약 15㎞에 이르는 물줄기를 말한다.
전 구간이 맑은 청정계곡이지만 그중에서도 하류부의 4~5㎞ 구간이 옥빛 소(沼)와 아담한 폭포 등 원시의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 있다.
폭발적인 여름 계곡 트레킹 지역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곳이다. 웬만한 가뭄이 아니고서는 수량이 풍부해 찾는 사람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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