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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문턱, 약동하는 기운이 대지에 가득하다. 풀들은 습기를 머금은 흙 위로 새싹을 밀어올리고 씨앗들은 햇볕을 자양 삼아 움을 틔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료한 일상에서 뛰쳐나와 생동하는 생명의 행렬에 몸을 맡기자. 바다는 아직 차고 들녘의 꽃은 3월 하순쯤에야 꽃망울을 틔울 것이라고 한다. 이럴 때 근교 산으로 한번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 대구에서 두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함양의 오도재와 삼봉산으로 봄 마중을 떠나 보자.
▷ 남해안-지리산 연결하던 오도재 삼봉산(1,186m)은 경남 함양군 함양읍`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산. 지리산의 맞은편에 우뚝 서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남덕유산의 준령들이 연무 속에서 몸을 우뚝 세웠다. 남쪽 등구재~백운산~금대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협곡을 지나 임천강으로 흘러든다. 등산의 기점은 오도재로 잡는다. 오도재는 옛날 내륙지방 사람들이 남쪽 해안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위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오도재의 오도(悟道)는 서산대사의 제자인 인오(印悟) 조사가 이 고개에서 득도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산 주변엔 ‘흥부전’의 주무대인 성산흥부마을, ‘가루지기전’의 배경이 되는 등구마을,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仇衡)의 궁궐이 있었다는 빈대궐터 등이 있다. 이 고개는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접근하는 가장 단거리 코스로 우마차만 겨우 통행하던 길에 2004년 도로가 개통되었다. 뱀같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도로는 이제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오르는 길 주변에는 ‘가루지기전’의 전설을 상징하는 옹녀샘,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이야기를 연출해 놓은 ‘남근석 조각 공원’도 조성돼 있다. 오도재 정상에는 ‘지리산제일문’이 세워져 있다. 경남과 전남`북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많으나 적당한 상징 관문이 없던 차에 함양군이 이곳에 총 5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완공한 것이다. 지리산 상징물의 하나로 평가되는 지리산제일문은 성곽 길이 38.7m, 높이 8m, 폭 7.7m, 문루 81㎡ 규모로 웅장한 위용을 갖췄다. 특히 이 문에는 함양 출신 정주상 선생의 글을 포함해 유명 서각가 남사 송문영 선생이 새긴 대형 현판이 볼거리다. 오도재를 넘어서면 지리산 칠선계곡 및 추성골로 갈 수 있고 마천 면소재지를 지나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하동바위 코스 등으로 등반할 수도 있다. ------------------------------------------------------------------------------------------------------------------------------------------------------------------------------------------------------------------------------------------------------------------------------------------------------------------------------------------------------------------------------------------------------------------------------------------------
▷ 지리산 한눈에 굽어보는 전망대 해발 778m인 오도재에서 산신각을 지나 서쪽 능선을 15분여 오르노라면 팔각정 전망대인 관음정이 나타난다. 산중턱에 정자를 세워 놓은 까닭은 일반 탐방객들도 올라서서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곳은 지리산을 한일(一)자로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 추녀 밑에서 땀을 식히노라면 하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서 연하봉`촛대봉`노고단`만복대 등 지리산 주봉우리 20여개가 차례로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은 아쉬운 점도 있다. 주변을 휘둘러보면 지리산뿐만이 아니라 다른 명산들이 즐비한데도 상세한 안내도가 없어 어느 봉우리가 어떤 산인지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도재를 출발해 1시간여 만에 오도봉(1,035m)에 도착했다. 산들의 퍼레이드에 취해 조망을 즐기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버렸다. 일행은 서둘러 정상으로 향한다. 오봉산에서 발걸음을 옮겨 50여분 만에 드디어 정상인 삼봉산에 도착한다. 정상에 올라서야 이 산이 왜 지리산의 전망대로 명명(命名)됐는지 한눈에 이해가 된다. 끝없이 펼쳐진 산너울에 일행은 말을 잇지 못한다. 동남쪽으로는 지리산 웅석봉과 법화산이, 그 좌측 멀리로는 황매산`오도산`비계산`가야산이 아름다운 암릉으로 자리매김했다.
▷ 마을과 마을 이어주던 ‘둘레길’ 삼봉산 등산의 장점은 환상적인 조망 말고도 등산로와 등산 시간이 다양하다는 점. 삼봉산에서 상봉-투구봉을 거쳐 팔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지만 체력이 조금만 허락한다면 등구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도 좋다. 삼봉산에서 등구재까지는 한시간여 소요된다. 등구재는 거북등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옛 장꾼들이 인월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길이다. 지금은 산꾼들만 일삼아 오르는 등산로가 되었지만 차츰 둘레길 트레킹이 활성화되면 옛날처럼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네트워크로 거듭날 것이다. 식사 후에는 각자 취향과 체력에 맞는 등산로를 선택할 수 있다. 좌우측은 둘레길로 연결되고, 주능선을 계속 타면 백운산~금대산 코스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보건진료소가 있는 경상도 땅인 함양의 창원마을이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전북 남원의 중황마을로 내려서는 지리산 둘레길이다. 일행은 중황마을로 내려서는 둘레길을 택했다. 잘 닦여진 임도를 내려서며 바라보는 상황마을과 주변 산군의 형세는 너무 평온하다. 마을 뒤쪽으로 봉긋봉긋 무덤들이 전통적인 촌락과 어우러져 풍경을 빚고 그 너머 서쪽으로는 지리산 줄기인 바래봉과 덕두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최근 둘레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상황마을 주변에는 주막집도 들어서 있고 민박집으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큰 한옥들도 골조를 올리고 있다. 노선버스를 이용하거나 실상사를 구경하려면 반드시 중황마을에서 하황마을로 내려서야 한다. 등구재에서 60번 지방도가 있는 하황마을까지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근처에 남원의 명찰 실상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찰로는 드물게 평지에 위치해 있고 3층 석탑 등 국보급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편안하게 절을 둘러본 후 인월을 거쳐 지리산IC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진행하면 된다.
글`사진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 san32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