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에서 분출한 1천℃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하게 되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기둥의 단면이 4~6각형 모양으로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한 방향으로 연장 발달하면 기둥 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columnar joint)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가의 주상절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433호)와 울산시 산하동에 위치한 강동화암 주상절리(시도기념물 제42호), 그리고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주상절리군이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2009년까지 군부대의 해안작전경계지역에 위치해 해제 전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까닭이다.
그러다가 2010년 8월 국토해양부의 ‘해양경관조망벨트사업’에 경주시가 응모, 선정돼 동해안에선 유일하게 사업이 추진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12월까지로 사업비 11억2천만원이 투자돼 야생화길, 몽돌길, 데크길, 등대길 등을 테마별로 꾸몄다. 그 길이 바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와중에 9월 25일,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게 됐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의 시작점은 경주 양남면 읍천항이다. 안내판에서 조성된 길을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난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본격적인 소리길이 시작된다.
◆읍천항 등대 너머 코발트색 동해가 한눈에=처음부터 미끈한 해송 몇 그루가 범상치 않은 풍경을 예고한다.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면 흰색과 붉은색의 두 등대가 읍천항을 경계하듯 호위하는 게 보인다.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파란 동해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명물 출렁다리를 지나면 하얀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과 해송 사이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을 빠져나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는 곧장 몽돌해변으로 소리길이 내려서게 된다. 파도소리 들으며 몽돌해변 길을 걸으며 기암과 바다를 조망한다. 이윽고 언덕에 올라서면 전망처이자 포토존이 조성되어 있다. 포토존에는 ‘느린우체통’이라 명명된 붉은 우체통이 눈길을 끌고 본격적으로 주상절리군이 관측된다.
제일 먼저 만나는 주상절리는 ‘부채꼴 주상절리’다. 약간 구부정한 주상절리 석축이 50여m에 걸쳐 거대한 성벽처럼 쌓여 있고, 그 오른쪽 끄트머리에 부채살처럼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양남의 주상절리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길이 10m가 넘는 주상절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보는 방향과 생각에 따라 백두산 천지가 연상되고, 꽃송이처럼 둥글게 펼쳐진 모양이 꽃을 닮았다고 해서 화형주상절리 또는 흑화라고도 불린다. 그 모양이 마치 바람에 부풀어 오른 여인네의 주름치마와도 같아 원조 섹시 아이콘 메릴린 먼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다양한 이름과 희귀한 모양으로 세계적 자연유산으로서 지질공원 지정과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전망대를 돌아 나와 다시 해변 가로 내려선다. 흙길이 조성되어 나름 운치가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몽돌해안가의 우뚝한 삼각형의 기암들. 크고 작은 기암 꼭대기와 사면에는 단단한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해송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경이롭게 보인다.
몽돌 길을 통과하면 첫 번째 사각정자가 있는 ‘위로 솟은 주상절리’전망대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는 ‘수직주상절리’ 또는 ‘입상주상절리’라고도 불린다. 정교한 돌기둥들이 수직으로 넓은 면적에 군집되어 원목을 한자리에 묶은 형태와 같은 형상으로 수직으로 발달돼 있다. 고대 희랍의 신전 기둥처럼 줄지어 서 있는데 연탄 또는 숯을 한 묶음씩 엮은 모양으로 보인다. 그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또한 무척 여유롭다.
◆주상절리 절묘한 기둥 고대희랍 신전 보는듯=100여m를 더 진행하니 두 번째 사각정자가 있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와상주상절리) 전망대다. 원목집하 주상절리로 10~20m의 정교한 돌기둥들이 원목을 한자리에 포개어 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누워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철도 침목을 계단형식으로 포개어 놓은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대 희랍 신전의 거대한 기둥처럼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가장 광범위하고 거대하게 형성이 되어 있고 주상절리 중 전망대와 가장 가까이 있어 내려서서 주상절리 위로 올라가거나 지척에서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충분한 볼거리를 즐기고 하서항이 있는 직사각형 건물로 진행하면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중앙 윗부분에는 ‘주상절리와 그림 있는 어촌마을’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하서항 쪽을 바라보면 넓게 형성된 울퉁불퉁한 바위지대 너머로 마지막 ‘수직주상절리’가 보인다. 파도 속에 잠겼다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파도에 지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방파제 너머로 그림 같은 하서항의 풍경이 보인다. 방파제에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끝이 난다. ‘파도소리길’은 구간별로 몽돌길·야생화길·등대길·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등대길 구간은 파도·등대·주상절리의 자연경관을 출렁다리에서 동시에 감상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구간으로 파도소리길의 새로운 명소다.
◆1.7km 파도소리길엔 문화유적`맛집 즐비=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약 1.7㎞는 해안가에 조성되어 있다. 왕복하면 약 3.4㎞에 달한다. 전체 소요 시간은 걷는 속도와 목적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국내 최대의 주상절리 구간으로 호기심과 신비감, 감탄을 자아내는 둘레길이다.
가는 길목에 골굴사·기림사·감은사지·문무대왕릉·이견대 등 역사유적지와 항구·해수욕장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미리 계획만 잘 짠다면 멋진 하루 일정으로 대만족할 수 있는 코스다. 야간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이 가능한 곳이다. 읍천항 갤러리(2.3㎞)와 연결된 4㎞의 테마가 있는 어촌거리이다.
★가는 길=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를 지나 31번 국도 대본삼거리에서 오른쪽 울산 방향이다.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봉길리해수욕장을 지나 500여m의 터널을 통과한다. 나아해수욕장을 지나면 ‘주상절리 읍천항’이라는 거대한 입간판이 왼쪽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