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시산제의 명산, 홍성 백월산
# 하늘이 내린 영험함 기려 산머리에 충신 사당
새해가 밝았다. 그와 더불어 산꾼들은 산악회의 연중 행사인 시산제 산행으로 한 해 동안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행사를 준비한다. 시산제 산행의 조건은 우선 산이 신령스런 산이어야 하고 많이 붐비지 않은 한적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산행 중이나 산행 후 제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시산제 시간에 맞추어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자칫 산행 시간이 길어져 목적이 산만해지다보면 경건해야 할 산제의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그러나 막상 산제를 준비하다 보면 그 조건에 맞는 산을 선택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홍성 백월산(394.3m)은 여러 가지 의미로 시산제로 아주 적당하다. 속세를 떠난 불가의 속설과 장엄하고 웅장한 기암을 지닌 속리산에서 서편으로 한남금북정맥을 분기하여 경기 안성에 이르러 서북향으로 한남정맥을, 서남향으로 금북정맥을 분기해 홍성에 이르러 산 하나를 들어올리니 바로 홍성을 아우르는 진산(眞山)인 백월산이다.
홍성은 천수만에 접해 있는 서쪽을 제외하면 동·남·북쪽이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오서산(791m)을 비롯해 삼준산(490m)·봉수산(484m)·아차산(424m)ㅍ백월산(白月山 394m)·용봉산(龍鳳山 381m)·초롱산(340m) 등이 솟아 있어 지형은 대부분 구릉(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행의 기점은 크게 세 군데. 석련사와 용화사가 있는 미력골재와 산혜암 주차장, 그리고 구황면사무소 우측이다. 석련사는 1시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고 큰 오차는 없으나 원점회귀형 산행을 원한다면 용화사와 월산파크모텔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러나 등산로가 서로 지척에 있어 조망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제일 좋은 등산로는 구황면사무소에서 시작해 산혜암에서 마치는 것이다.
구황면사무소 우측, 구황면119지역대 옆으로 백월산 등산로 안내도와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면사무소에서 정상까지는 약 2.6㎞, 처음부터 무리해서 오를 산은 아니다. 완만한 등산로를 조금 오르다 보면 주변이 온통 소나무 숲길이다. 백월산은 웅대함과 듬직함은 없지만 내 품안에 든 듯 부드럽고 완만한 산이다. 20여 분이면 금북정맥 길을 만나게 되고 등산로는 임도이다.
등산을 시작한 후 45분이면 정상이다. 정상의 흉물스런 돌탑이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철망 우측에 홍성산우회가 세운 정상석이 아담하다. 그러나 조망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동편으로 홍성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멀리 합덕평야도 보인다. 북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청난사와 팔각정이 차례로 보이고 그 너머로 바위산 용봉산과 가야산이 보인다.
용봉산과 백월산은 높이가 비슷하다. 기암이 많은 점도 비슷한데 기암괴석과 바위봉은 용봉산이 훨씬 더 많다. 거기에는 나름의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옛날 백월산 장군과 용봉산 장군이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예쁜 여인 소향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산에는 거대한 돌들이 있었는데 투석전을 벌인 끝에 백월산 장군이 이겼다고 한다.
그때 백월산 장군이 던진 돌이 훨씬 더 많이 용봉산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용봉산에는 거대한 바위와 기암들이 쌓여 작은 금강산처럼 절경을 이루고, 용봉산 장군이 던진 돌은 상대적으로 적어 백월산에 기암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향도 백월산 장군에게 시집을 갔는데지금도 홍성읍에는 소향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백월산 쪽으로 더 가까이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 서니 거대한 코끼리바위가 반긴다. 임도 옆에 순찰대 건물이 보이는데 무속인들의 차량을 통제하는 곳이다. 백월산에는 유난히 사당과 기도터가 많다. 하늘이 내린 영험한 산이라 항상 많은 참배객들이 붐빈다. 거대한 바윗돌 사이를 지나니 바위봉을 등지고 벼랑 위에 홍주 청난사중수비와 청난사가 있다.
청난사는 임진왜란 중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가신 등 다섯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산머리에 충신의 사당이 있는 곳은 여기 백월산뿐이다. 경술국치를 전후해 많은 의병들이 이 산으로 들어와 장렬한 최후를 마쳤는데 청난사가 민속신앙의 당집도 겸하고 있다. 사시사철 제물이 차려져 있고 자주 굿판이 벌어지곤 한다. 당집 앞에는 지름 30㎝ 정도의 둥근 구멍이 파져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구멍에 소피를 받아 단군제의 제물로 썼다고 한다. 조망은 정상보다 청난사 뒤편 바위 위가 훨씬 더 좋다.
건너편 구릉 같은 봉우리에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천제단이 있다. 해마다 홍성군에서 영신 고천대제(迎新 告天大祭)와 단군제를 여는데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 산악회에서 산신제 제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곳곳에 기암괴석들이다. 하산로는 하늘사다리로 불리는 가파른 나무계단 길이다. 계단 길을 다 내려서면 바위 전망대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척의 용봉산과 홍성시내 조망이 그림 같다. 바로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용화사가 있는 미력골재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고 우측이 산혜암으로 가는 길이다. 산혜암은 백월산의 동사면 중복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자가용은 산혜암 주차장까지 진입이 가능하나 대형버스는 용화사 옆 609번 지방도 미력골재에 주차하는 게 낫다. 어느 쪽에서 등산을 시작하든지 약 6㎞ 거리에 넉넉잡아 3시간 이내면 등산 겸 시산제도 가능하다. 이정표가 있어 산행에 별 어려움이 없다.
일명 월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백월산의 서쪽에는 일제강점기의 문무대표라 할 만한,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있어 들러볼 만하다. 30분 거리에는 남당항이 있다. 조개의 속살이 새의 부리모양과 닮아 새조개로 불리는 ‘남당항 새조개 축제’가 해마다 1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열린다. 새조개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잡히는 것이 가장 맛이 좋은 것으로 특히 천수만 새조개는 단백질`철분`타우린이 풍부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 미식가들은 물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좋아하는 이 지역 대표적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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